장애인이 주체인 차별금지법 추진

지난 22일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하 여장연)이 자리한 종로5가 기독교회관, 조옥 사무국장이 수위에게 엘리베이터를 다시 작동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7시가 넘은 시각 건물 엘리베이터가 멈추면서 이날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 여성차별연구팀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한 여성장애인 한 명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 만난 자리에서 여성팀 김광이 팀장은 장애인 문제의 키워드는 '접근권'이라 말했었다.

하나, 둘 참석자들이 도착하고 열다섯번째 여성팀 세미나인 이날 회의에서는 다음달 3일로 예정된 장추련의 일곱 번째 연속공개토론회에 대해 논의했다. 늦은 시각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줄곧 환한 표정인 참석자들. 아마도 여성장애인의 희망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여성장애인, 그들의 목소리가 담기기 때문일 것이다.

비장애인이 만든 장애인 법

지난 80년대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관련 정책과 법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장연 김광이 정책위원은 “법률을 만든 정책결정 과정에서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이 주체였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률이 오늘날 장애인 관련법인 “장애인의 인권은 없고 보호만 있는 장애인복지법, 더욱 소외를 가중하는 특수교육진흥법, 장애인 비정규직만을 양산하는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장애인을 리프트나 승강기에서 추락사하게 하는 장애인이동보장법(약칭)”이란 지적이다.

이같은 장애인 관련법의 문제와 공백이 불거지면서 장애우권익연구소와 열린네크워크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초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골고루 담아내기 위해 지난 4월 범장애계 58개 단체가 연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를 공식 출범시켰다.

장추련은 장차법 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 7월부터 장추련 연속공개토론회를 열고 있으며 이미 지난 17일 여성팀이 주관한 '장애여성 인지적 관점에서 장차법 다시보기Ⅰ'를 주제로 여섯 번째 토론회를 진행했다. 앞으로 세 차례의 공개토론회를 더 거친 후 오는 11월에는 장차법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성차별연구팀은 장추련 법제정위원회에서 총칙팀, 차별금지팀, 권리구제팀과 함께 장차법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장차법 전반에 성인지적 관점을 담고 여성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조항을 고민하고 있다.

새 장차법에는 장애여성이 있다

장애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를 받아왔다. 한편 장애인계에서도 남성장애인들이 주요 역할을 맡으며 장애여성의 소외는 한층 심화됐다. 장추련에서 여성팀의 적극적인 목소리 내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란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장추련 법제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여성차별연구팀 김광이 팀장은 “장애인들이 말하는 당사자주의와 여성주의 시각인 경험 중심적 사고는 상통한다”며 “법의 존재를 위한 법제정 운동이 아니라 장애유형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참여한 장애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장애인들은 사실 장애인계뿐 아니라 여성문제에서도 소외돼왔다. 여성발전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여성 관련법은 여성장애인이 처한 사회적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여성장애인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남녀고용평등법 등은 보편적 속도(동일노동, 동일임금)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여성에게 적용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여성팀은 지난 열다섯 번의 세미나를 거치며 차별의 개념에서부터 교육, 성의식, 모성권, 고용, 접근권, 문화권에서 여성장애인에 가해지는 차별에 대해 경험과 사례를 나누고 이를 법안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여성 문제와 장애인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해도 여성장애인 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다.”

김광이 팀장은 장차법 제정 이후에도 궁극적으로 여성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특별법과 같은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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