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수·제자 성추행 혐의 박모 전주대 교수
1심 “피해자 진술 일관돼...거짓이라 보기 어려워” 유죄 판결
항소심서 뒤집혀...전주지법 “피해자 진술 신빙성 낮고 증거 부족”
여성·시민단체 “피해자 진술이 아니라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이 문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전북시민행동 등 연대단체들이 28일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미투운동과함께하는전북시민행동 등 연대단체들이 28일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2018년 ‘연극계 미투’ 가해자로 지목돼, 제자와 동료 교수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전주대 교수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여성·시민단체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이 아니라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이 문제”라며 반발했다.

2018 ‘연극계 미투’ 폭로로 과거 성폭력 의혹 재조명
1심 “피해자 진술 일관돼...거짓이라 보기 어려워” 유죄 판결
항소심은 반대로 “피해자 진술 신빙성 낮고 증거 부족”

박 교수는 2014~2015년까지 동료 교수와 학생 등 2명을 승용차와 사무실 등에서 강제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8년 ‘미투(#MeToo)’ 운동 당시 “지역에서 수십 년간 활동하며 명성을 떨치고 단과대학장도 역임한 박 교수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연출하는 연극의 배우나 스텝으로 참여하는 학생, 교수를 상대로 ‘갑질’과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전주대 학생들은 박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박 교수는 결백을 주장하며 유서를 언론에 보내고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월 1심은 박 교수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며, 무고죄를 감수하면서까지 거짓 진술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전주지법 형사2단독 오명희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자신을 악의적 의도로 음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해 실형이 불가피하다”며 박 교수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3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박 교수는 지난 6월 19일 항소심 재판부가 보석 신청을 받아들이며 풀려났다. 변호인만 13명을 선임해 “지역에서는 유례없는 규모”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28일 전주지법 제1형사부 강동원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박모 전주대 교수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들의 진술은 사건 발생 시간과 장소, 상황 등에서 모순된다” “검사가 제기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내리기 어렵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여성·시민단체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아니라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이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전북시민행동’ 등 72개 단체는 이날 선고 후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항소심 재판부가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보여줬다며 강 부장판사의 “진술보다 증거” “소환된 피해자 가족에게 ‘남편으로서 사건 당일 아무런 조치도 안취했습니까? 화가 나거나 분노가 일지 않았습니까?’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피고인을 ‘외간남자’라고 지칭했다” 등 발언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권지현 성폭력예방치료센터장은 “피해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너무나 심각한 2차 피해를 겪어왔다. 항소심 무죄 판결 이후 연락이 잘 닿지 않는 피해자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사법부는 성폭력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성인지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교육을 실시하라”며 “대법원은 반드시 이 사건을 파기 환송하여 다시 심리할 수 있도록 응답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전북시민행동 등 연대단체들이 15일 전주대 앞에서 ‘대학 내 미투 사건’ 가해교수 징계를 촉구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미투운동과함께하는전북시민행동 등 연대단체들이 15일 전주대 앞에서 ‘대학 내 미투 사건’ 가해교수 징계를 촉구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대학은 2년7개월째 징계·진상조사 없이 침묵

박 교수는 전주대에서 직위해제된 상태다. 전주대는 1심 유죄 판결 후 박 교수를 파면하겠다고 밝혔으나, “최종심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직위해제를 유지했다. 2년 7개월이 흐르는 동안 징계는 없었다. 대학이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었다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다. 여성·시민단체들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형사재판의 결과에 상관없이 학교법인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엄중한 결정을 제대로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대학에 돌아올 기반을 유지시켜주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이 확정된다면 박 교수는 학교로 돌아간다. 전주대 측은 “최종심 결과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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