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양성평등 문화인상
정정엽 화가

정정엽 ⓒ홍수형 기자
정정엽 화가 ⓒ홍수형 기자

정정엽 화가는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삶과 노동에 집중해온 대표적인 여성주의 화가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가부장적인 관점이 세상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이제라도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여성주의 시각은 오히려 균형 잡힌 시선과 자유로움을 줬다. 언제나 그를 깨어있게 하고 새로운 과제다.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많은 의문들을 찾아다니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곧 남성을 의미한다’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유롭고 주체적인을 삶을 살려면 여성의 삶은 창작돼야 하고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여성의 언어, 살림, 가사, 육아, 돌봄 노동 등 잘 보이지 않는 여성 노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노동문제는 1980년대 한국의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 갖게 됐습니다.”

정정엽 작가의 '최초의 만찬2'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던 작가가 그림 속에 여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린 작품이다. ⓒ이응노의 집
정정엽 작가의 '최초의 만찬2'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던 작가가 그림 속에 여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린 작품이다. ⓒ이응노의 집

1985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1995년 이십일세기 화랑에서 첫 개인전 ‘생명을 아우르는 살림’을 시작으로 2000년 ‘봇물’, 2001년 ‘낯선 생명’ ‘그 생명의 두께’, 2009년 ‘얼굴 풍경’ ‘Red Bean’, 2014년 ‘길을 찾는 그림, 길들여지지 않는 삶’, 2011년 ‘Off Bean’ 등 개인전을 열었다. 30년 가까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정 작가는 직장인처럼 주 5일, 하루 8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여성의 일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고 더구나 예술 활동은 당면 과제가 아닌 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직업인으로 저의 시간을 침해받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직장이에 대한 윤리성도 조금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몸으로 하는 일은 절대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요즘에도 주 5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주 4일 작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웃음)”

정정엽 ⓒ홍수형 기자
정정엽 화가 ⓒ홍수형 기자

작업 방식은 따로 없다.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법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작업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 다음 거기에 맞는 형식을 아무거나 가져다 씁니다. 사실 이제는 미술에서 필요한 형식은 다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언어로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작업도 정해놓지 않습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도 ‘어떤 의도로 가야겠다’라며 출발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임합니다.”

정 작가는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하는 말에 작업의 힘을 얻기도 한다.

“전시장에 작가인 척하지 않고 관객들 뒤에 서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을 즐깁니다. 제 작품 앞에서 심각하게 바라보는 관객들을 보면 민망하기도 하지만 고맙기도 합니다. 특히 제 작품 속 어떤 지점이 여성인 자신에게 연대감과 자긍심을 심어줬다고 했을 때 ‘(앞으로) 그림을 그려야겠구나’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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