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에 부쳐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화대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폐지공동행동은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낙태죄' 완전 폐지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여성들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1년 6개월 만에 정부가 내놓은 '낙태죄' 개정안은 격렬한 찬반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로라이프(prolife)와 프로초이스(prochoice)의 대립구도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단순한 대립관계가 아님을 판시했으나 정부는 낙태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는 대신 주수에 제한을 두는 입법 개정안을 내어놓음으로써 해묵은 논쟁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았다. 태아에 대한 생명 보호를 임신한 여성에 대한 처벌로 대신하겠다는 논리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논쟁 구도가 한국의 상황에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임신중지를 처벌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 때부터로 가부장제의 기초를 확립해가던 시기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남자가 가지는 자녀에 대한 기대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 처벌하기 시작했고, 중세에 들어서면서 태아의 생명을 살해하는 범죄로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교의 생명윤리 이전에 이미 가부장적 통치 수단으로서 낙태에 대한 여성의 단죄가 있었고, 종교 역시 오랫동안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서 이를 뒷받침해 왔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1960년대 초부터 정부 차원에서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인구증가 억제정책을 실시했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권장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압박했으며, 인공중절수술은 산부인과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80년대 이후에는 악명높은 여아낙태가 더욱 더 성행했다. 이즈음에 종교계에서 생명 존중의 윤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와 신념으로 강력한 투쟁을 해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이미 여러 논문과 소설 등에서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전문병원마저 낙태 사업에 바빴던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이 임신 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그 어떤 선택권도 법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고 조금 놀란 것은 생명윤리에 대한 필자의 문제의식과 상당 부분 일치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낙태가 무분별해진 점에 대해 비판했으며,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또 낙태가 여성에게 얼마나 큰 후유증을 안기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역설했다. 문제는 그 신념이 너무 급조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프로라이프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급격한 출생 감소로 인구 절벽에 가 닿기 시작한 2010년대 들어서였으며, 출생 감소의 해소 방안으로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낙태죄를 꺼내들어 여성과 의료계를 단죄하고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신 혹은 임신 중지의 전 과정은 태아뿐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 생명권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소모적 대립으로 낙태죄의 존폐를 논할 것이 아니라 태아와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들이 폐지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생명존중의 논리 뒤에 숨어 여성을 단죄해 왔던 가부장적인 국가권력이기 때문이다.

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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