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으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0.10.20. ⓒ뉴시스·여성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으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0.10.20. ⓒ뉴시스·여성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19일 수사지휘권 행사를 통해 ‘라임 사건’과 ‘검찰총장 가족 사건’ 관련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는 수사의 결과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추 장관의 이번 수사지휘권 행사는 역대 세 번째로, 지난 7월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대해 이미 한차례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바 있다.

수사지휘권 행사의 법적 근거는 검찰청법 제8조에 적힌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 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이다. 한국 현대사의 권위주의 정권들 아래에서 검찰이 비공식적인 여러 경로를 통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으며 정권의 입장을 수용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이번 추 장관의 경우는 공식적인 서면을 통해 진행한다는 것이 이전의 경우들과 다른 것일 테다.

예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검찰 독립성’ 훼손이냐, 아니냐로 의견이 팽팽히 나뉘었다. 정치권에서도 지난 1996년 현 집권여당의 뿌리 중 하나인 국민회의 의원을 포함한 112명의 야당 의원들이 수사지휘권 폐지를 위한 법개정안 통과를 추진했으나, 역시 현 야당인 국민의 힘의 전신 중 하나인 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입법에 실패한 바 있다. 수권 여부에 따라 입장이 바뀔 뿐 검찰 권력을 자신의 휘하에 묶어 두고 싶은 욕망은 동일했다.

추미애 장관은 이번 결정의 취지를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여야 정치인 및 검사들의 비위 사건, 총장 본인과 가족 관련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핵심은 라임 사모 펀드 운용과 관련한 각종 비리 수사를 자신들의 주도하에 진행하고 싶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청와대와 권력 핵심을 둘러싼 각종 게이트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내년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정부가 어떤 무리수라도 사용할 준비가 됐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이번 결정에 깔린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핵심 인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측이 16일 자필 형태의 옥중서신을 공개했다. 2020.10.16. ⓒ뉴시스·여성신문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핵심 인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측이 16일 자필 형태의 옥중서신을 공개했다. 2020.10.16. ⓒ뉴시스·여성신문

혹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의 사문소 위조 등 관련 사건을 라임 사태와 같은 문장으로 엮은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라임 사태로부터 분산시키기 위한 교란작전이 아닐지 의혹을 제기한다. 예로부터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 메신저를 공격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기만술은 권력이 애용한 기술 아니던가.

라임 사태의 중심에 있는 라임자산운용은 2019년 7월 말 기준으로 사모펀드 설정액이 5조9000억원에 달한 국내 최대의 사모펀드 운용사였다. 이들은 은행 예금금리의 5배가 넘는 연 10퍼센트 대의 수익률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이들과 관련해 시장에 떠돌던 각종 의혹이 지난해 7월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은 대규모 환매 요청을 했다. 라임 측은 같은 해 10월 자신들이 운용하는 일부 펀드에 대해 환매중단을 발표했다. 사모펀드에서 환매 중단은 사실상의 파산선언이다. 제 아무리 윤 총장 가족이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중요하다 해도 피해자 규모만 4,000명에 이르고,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 금액이 1조 6700억 원에 이르는 사건과 함께 묶는다는 것은 의도의 불순함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라임자산운용의 자금줄이었던 사람이 현재 감옥에서 편지 하나로 정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다. 기업사냥을 통해 자산을 확보하는 기술이 탁월했다고 알려진 김 씨는 각종 정관계 로비를 통해서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최근 그는 전 청와대 정무수석인 강기정 씨에게 로비했다고 밝혔고, 뒤이어 야당 정치인과 현직 검사에게도 로비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 하나하나에 정권의 희비가 바뀐다는 사실이 안쓰럽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대신증권 라임펀드 피해자 모임이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앞에서 피켓을 들고 피해보상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2020.10.17. ⓒ뉴시스·여성신문
대신증권 라임펀드 피해자 모임이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앞에서 피켓을 들고 피해보상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2020.10.17. ⓒ뉴시스·여성신문

예전이라면 이런 사건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곳이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었다. 합수단에는 검찰만이 아니라, 국세청,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에서 전문인력이 파견돼 함께 근무했다. 이들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여의도 저승사자’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금융관련 범죄 수사에 있어선 최고였던 조직이었다.

그러나 추 장관이 1월 5일 취임하고 얼마 안 된 1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합수단이 폐지됐다. 그 결과 사건 조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신속한 정보 취합 등의 장점이 사라져 금융 사기 등에 의한 피해자 보호에 큰 장애가 생겼다. 신라젠 의혹과 라임사태로 인한 피해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에 대해서 많은 의혹이 따른 것은 당연했다. 국민들의 의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 정권 주요한 인사들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라젠 사건 수사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합수단 폐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간의 행적들로 미뤄 보았을 때 추 장관이 말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 이미 수사 주체인 검찰에 대해서 학살에 가까운 인사 이동이 몇 차례 있었고, 이로 인해 장관에 대한 충성이 제일 중요한 인사들로 검찰 수뇌부가 물갈이 됐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려진 수사 결과는 결국 또 다른 정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일 뿐이고, 금융 사기로 인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어질 것이다.

한국을 지탱해 주던 일상의 믿음들이 부정 받고 있다. 공정을 말할수록 공정이 조롱받고, 정의를 말할수록 정의가 깨져 나가는 파국적인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타개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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