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경자 『절반의 실패』,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 재출간
여성이 결혼제도 속에서 겪던 부조리
깊고 눅눅하게 나타나있어
현대에도 '같은 모습 아니냐' 질문 던져

이경자 작가의 소설집  『절반의 실패』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 ⓒ걷는사람
이경자 작가의 소설집 『절반의 실패』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 ⓒ걷는사람

 

이경자 작가의 소설 『절반의 실패』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가 첫 출간 30여년 만에 재출간됐다. 소설이 처음 출간한 해 태어난 여자아이들은 30대의 성인이 됐다. 그러나 태어나던 해 아이들의 어머니가 겪었던 부조리는 30년을 뛰어넘어 딸에게로 내려왔다.

1988년 배우 고 최진실은 삼성전자의 VTR 광고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미리 녹화했다가 틀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고 생긋 웃어 보였다. 행복해 보였던 미소 뒤에는 ‘남자를 다룰 줄 알고 여우같이 지혜로운’ 여성상에 대한 그 시대의 요구가 있다.

고 최진실이 사랑스러운 주부를 연기한 그 해 『절반의 실패』가 출간됐다. 고부 갈등, 가정폭력, 독박 가사 등 기혼 여성이 직면하는 고통이 절절했다. TV 미니시리즈로까지 만들어져 여성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4회를 연장 방송 했다. 4년 후인 1992년에는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가 출간됐다. 남자의 부속처럼 여자를 여기는 가족법, 남자에게 끝까지 연인일 수 없는 부인 등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소설을 읽은 많은 여성들이 가슴을 쳤다. 각개의 초단편소설들로 이어지지만 내용은 깊고 무거웠다.

소설가 이경자 ⓒ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소설가 이경자 ⓒ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30여년 전 사회의 부조리들을 강렬한 목적의식으로 쓴 소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가의 소설들은 오늘의 여성들에게도 현실의 부조리다. 독박가사와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워킹맘, 직장 내에 공공연한 유리천장, 타인이 개입할 수 없다며 외면하는 가정폭력, 중재자 없는 고부갈등, 성착취 현장에서 신음하는 여성. 옆자리 회사 동료로, 아침이면 화분에 물을 주는 이웃으로, 나의 오랜 친구로 볼 수 있는 초상이다.

지금 나는 혼자다. 곧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가족의 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도 내가 있을까?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와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다른 존재인가? 다른 존재인가? (259쪽, ‘살아나는 시간’, 『절반의 실패』 중)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는 1992년 출간 된 후 수많은 남성들의 항의에 절판됐다. ‘너무 과장했다’ ‘여자가 되바라진 소설을 썼다’ ‘남자를 악마처럼 그렸다“ 그런 항의였다. 이번 복간 결정은 ’1992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약 30여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이것을 과연 어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영화 『69세』를 둘러싼 남성들의 논란과 2010년대 들어 온라인에 나타난 ’맘충‘ ’독박육아·가사‘ ’취집‘ 등의 말은 30년 전 소설이 오늘도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30여년 후, 오늘의 딸들이 낳은 딸이 결혼을 선택하는 때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1993년 9월 소설 『절반의 실패』 머리말의 마지막은 이렇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새로운 미풍양속을 우리 함께 만들어보자. 활기찬 질서, 새로운 정서를 예감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작가 이경자는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살아남기』, 『꼽추네 사랑』 등 단편소설집과 장편 소설 『배반의 성』, 산문집 『시인 신경림』 등을 썼다. 여성이 가부장제적 사회 속에서 느껴야 하는 불합리함을 깊고 넓게 썼다. 올해의여성상, 한무숙문학상, 고정희상, 제비꽃서민문학상, 민중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같은 해 제19대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맡으며 44년만에 첫 여성 이사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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