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오빠는 필요 없다! ‘에놀라 홈즈’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오빠는 필요 없다! ‘에놀라 홈즈’
  •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20.10.08 11:10
  • 수정 2020-10-26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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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여동생’ 홈즈 이야기
에놀라와 엄마 유도리아 통해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부조리한 삶과
참정권 운동으로 TMS 세계관 확장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에놀라 홈즈’.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에놀라 홈즈’.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를 아시나요? ‘홈즈’라면 자연스럽게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이 연상된다. 그렇다면 같은 성을 사용하는 에놀라 홈즈는 셜록의 집안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추리는 여기까지다. ‘에놀라 홈즈’(Netflix, 이하 에놀라)에 따르면 에놀라는 홈즈의 여동생이다. 여기서 ‘셜록 홈즈에게 여동생이 있었던가?’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당연히 우리가 아는 코난 도일의 셜록에겐 형인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있지만, 동생은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낸시 스프링어가 재창조한 ‘에놀라 홈즈’ 시리즈에는 셜록에게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는 설정이 추가된다. 영화는 소설의 1권인 『사라진 후작』이 원작으로 한다.

에놀라의 16번째 생일날 몇 가지 단서만 남기고 사라진 엄마, 그리고 도움을 기대했던 오빠들은 그녀를 강제로 기숙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이에 에놀라는 엄마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고, 우연히 만난 듀크스베리 후작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후 위험에 빠진 그를 지켜주고자 사건에 뛰어든 에놀라는 여러 위기를 겪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에놀라’는 주인공의 도전과 모험을 그린 성장 영화이자 탐정 영화이다.

대개 재미있고 인기 많은 소설이나 만화,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곤 한다. 예전에는 이러한 현상을 OSMU(One Source Multi Use)라 칭했지만,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TMS)이라고 부른다. OSMU는 새로운 미디어로의 전환이 얼마나 수익을 창출하는지에 초점을 둔 산업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달리, TMS는 여러 미디어로 제작된 콘텐츠들이 각자 독립적인 스토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개별 스토리가 연결되어 상호적인 관계를 맺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다양한 콘텐츠를 아우를 수 있는 세계관의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에놀라’가 여성 인물을 통해 세계관을 확립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셜록의 여동생 에놀라와 엄마 유도리아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처한 불합리한 삶과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이야기의 세계를 확장한다. 유도리아는 경제권을 지닌 큰 아들 마이크로프트에게 거짓 내역을 보고하고 재정을 지원받는다. 오랜만에 방문한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사회가 요구하는 숙녀 교육을 받지 못한 에놀라를 강제로 기숙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이는 아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엄마, 사회가 요구하는 미덕을 강제로 주입당하며 가부장제에 억압받는 당대 여성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조적으로 유도리아의 가르침에 따른 독서와 실험, 체력 훈련을 수행한 에놀라가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여성들도 배움을 통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음을 제시한다. 또한 주인공은 셜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셜록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을 남성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벗어난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설명되어지고, 도움 받던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여성을 담아낸다. “여자들은 약한 것이 여자답다는 생각을 떨치고 여성 자신을 믿을 수 있고 강해져야 한다”는 팽크허스트의 말을 주인공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한편, 사라진 유도리아의 흔적을 쫒는 과정에서 격렬했던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서프러제트)도 일부 엿볼 수 있다. 극에 등장하는 폭탄과 테러 계획, 주짓수를 배우는 여성들의 모습은 서명과 의회 활동의 한계를 느끼며 ‘말보다 행동’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진행된 투쟁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이들의 노고는 영화에서 재현되진 않았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여성 운동가들의 활동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선거권이 앞선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에 의해 얻어낸 결과라는 점을 깨닫도록 한다.

한편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논리력의 화신인 셜록은 ‘에놀라’ 속에서 여전히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천재 탐정이지만,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유도리아의 동료이자 주짓수 사범인 이디스가 지적한 대로 “본인에게 딱 맞는 세상”이기에 셜록은 기존 질서를 바꾸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영화 후반에 살짝 엿보인 에놀라를 인정하는 셜록의 모습은 그가 동생의 영향으로 점차 여성 인권에 관심을 지닌 인물로 변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성 인물의 투입으로 넓혀진 세계관 속에서 에놀라와 셜록은 시대와 교감하는 캐릭터와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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