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기적의 도서관’ 유치를 주도해 이 도서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고 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이이효재 선생은 진해 ‘기적의 도서관’ 유치를 주도해 이 도서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고 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안개로 가리워진 성산일출봉 앞에서 그보다 크고 맹렬한 삶을 살아오신 이이효재 선생님의 울음을 기억합니다. 한참 그 풍경을 바라보며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동아시아의 상황을 탄식하셨습니다. 분단국가의 아픔은 현재까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되어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온전하고 평화로운 나라와 시대를 물려주지 못하여 너희들에게 미안하다며 손 붙잡고 한참을 아파하시던 그날은 제게 사뭇 슬프고 따뜻하게 남았습니다. 삶 전체를 약자와 평화를 위해 내어놓으신 어른이 손주 세대를 위해서 그리 뜨겁게 울어준 적 없었습니다.

겨를 없이 찾아온 제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셨고 농촌의 고령 어르신들의 소득증대와 도시 청년의 경제적 자립기반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대답을 하고 나니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을 서는 것에 참으로 고맙다고 말해주시며 좀 더 지역에서 많은 공동체를 위한 노력들이 일어났으면 한다고 당부하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사람이 모이고 뜻을 모으는 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해 가면 되는 일이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아픈 사람이 적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일러주신 선생님을 눈에 선연히 담아두었습니다. 하나의 언덕을 넘는 것도 힘겨운데 태산 같은 역사를 몇 개씩 넘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여쭈니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때에 내가 보니 해야 해서 그리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1989년 진관기숙사 앞에서 ⓒ고 이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1989년 진관기숙사 앞에서 ⓒ고 이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공론화 하고 가족법을 모든 이를 위하여 개정되게 하였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 등 사회문제에 먼저 목소리를 남기고 전해 듣기에도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저항하여 해직되기도 하셨습니다. 심지어 은퇴 이후에도 지역의 어린이들이 방과 후에도 또 다른 안전한 공간인 도서관에서 성장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신 이유가 가만히 보기에 해야 해서 했다는 그 맑은 목소리에 용기를 내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4.3평화공원기념관에 데리고 가셔서는 이런 슬픔을 제때 살피지 못하셨다고 하시며 아흔에도 계속 연구를 하시던 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반도에 드리우는 내외의 어려움 속에 고통 받는 반세기 전의 우리는 가고 없지만 시대는 변하는 데도 사회에는 함께 해야 하는 고통 받는 우리들이 선생님 옆에 남아있었지요. 젊은이가 지금에 누리는 역사의 결실이 묵묵히 지나오신 실천과 연구의 산물이었음을 이제 압니다. 먼저 부끄러워하고 함께 살아내겠습니다. 선생님의 어떤 것을 제가 닮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향하는 순수하고 따뜻한 온기만은 적어도 옳게 배워 생전에 담담히 지나가신 역사를 넘어 다음세대에게 전하겠습니다.

생생농업유통 대표이자 산나물 밥집 ‘소녀방앗간’의 이사인 김가영 대표. ⓒ이정실 사진기자
생생농업유통 대표 김가영 대표.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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