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졸업한 신필식 박사
15년째 여성환경연대 활동 중인 에코 페미니스트
“여성학은 제 삶의 일부...
한국 남성으로서 몰랐던 것 깨닫는 ‘특혜’ 얻어”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 주제로 박사논문
“여성 홀로 아이 낳아 기르기 힘든 사회에서
여성들, 더 나은 대안으로 해외입양 결정...
친생모들 향한 편견·차별 여전...개선돼야”
“가학·피학으로 쾌락 얻는 남성들의
왜곡된 성문화 개선 위해 뭔가 해야겠다 생각”

 

5일 오전 서울 충정로 한 카페에서 신필식 여성환경연대 열성회원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신필식(43) 박사는 지난 8월 말 1999년 서울대가 여성학협동과정을 개설한 이래 남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진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충정로 한 카페에서 만난 신 박사. ⓒ홍수형 기자

 

첫 남성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가 최근 탄생했다. 지난 8월 말 1999년 서울대가 여성학협동과정을 개설한 이래 남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필식(43) 박사다.

자신을 ‘에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신 박사는 약 15년째 여성환경연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1년 여성신문 인터뷰에서도 “여성환경연대가 강력 추천한 열성파 남성 회원”으로 소개됐다. (“여성문제는 모든 인류의 고민, 그래서 나섰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178) 생태·환경에 관심이 많아 농과대학에 갔다가, “결국 사회 문제”라는 생각에 환경대학원에 갔다. 에코 페미니즘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석사논문도 에코 페미니즘을 주제로 썼다. 

10년 만에 박사과정을 마친 소감을 묻자, 신 박사는 “‘여성학은 남성을 공격하려는 것 아니냐’ ‘남성이 무슨 여성학을 하냐’ 등 공격을 받아도 당황하거나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게 왜 오해인지 설명하고 방어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했다.

“여성학은 제 삶의 일부가 됐어요. 그 속에서 저를 돌아보고 바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남성으로 태어나 몰랐던 것들을 듣고 느끼는 ‘특혜’를 얻었어요. 큰 나무 같은 여성학 선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은을 해야 할까요. 이제 출발점에 선 느낌입니다.”

신 박사의 지도교수였던 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는 “굉장히 성실하고 통찰력 있고 완벽주의적인 면도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 박사를 오래 알고 지냈다는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도 “참 겸손하고 성실한 여성학자”라고 말했다.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 주제로 박사논문
“여성 홀로 아이 낳아 기르기 힘든 사회에서
대안 찾던 여성들, 해외입양 결정...
친생모들이 겪은 가부장제 편견·차별 여전...개선돼야”

그의 박사논문 주제는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이다. 아이를 해외입양 보낸 한국 여성들과 그들의 모성 경험이 갖는 여성주의적 함의를 연구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이다. 10여 년 전 한국 출신 스웨덴 입양인들을 만난 후 줄곧 관심을 둔 문제다.

“한국은 지난 70여 년간 약 20만 아동을 해외입양 보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많은 연구가 ‘여성의 잘못’ 또는 ‘국가의 잘못’이라고 설명해요. 아이 엄마들은 ‘무책임하게 애를 낳고 버린 나쁜 여자’ 또는 ‘권위주의적 국가와 가부장제하에서 애를 빼앗긴 피해자’로 그려졌어요. 하지만 이런 이분법은 해외입양의 고통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는지, 한국은 왜 자국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계속 해외로 보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요.”

신 박사는 “그간 ‘버려진 아이들’로 인식·기록된 한국 해외입양 아동 대부분이 실제로는 시기별 변화 속에 입양대상 아동이자 친생부모로부터 입양 의뢰됐다”며 “여성들이 무력하게 자녀를 빼앗기거나, 비정하게 자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 자녀를 보살필 방법을 고민한 끝에 가장 나은 대안으로써 해외입양을 결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 혼자서도 아이를 잘 기를 만한 환경이 아니었고,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입양에 대한 선망, 정부의 해외입양 자율화 정책도 한몫했다. 1980년대 들어 해외입양 금지정책이 철회되고 입양 절차도 간소화되며 전국적으로 입양 상담소가 늘었다. 빠르게 늘었던 해외입양 상담건수는 1988년~1992년 급감했다. 입양 외의 선택지가 늘었기 때문이다. 기혼여성, 성인 미혼모, 빈곤가정, 모자가정의 여성들의 양육지원정책이 확대됐고, 모성 지위도 더 높아졌다. 해외입양에 대한 기대는 사그라들었고,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 정부도 입양 축소 방침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10대 미혼모의 경우 입양 외의 선택지는 아직도 부족하다. “결혼제도 내 임신·출산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한국에서 양육을 결정한 미혼모가 체감하는 시선은 아직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현실”이라고 신 박사는 말했다. 해외입양 친생모 문제를 다룰 때 ‘10대 미혼모’가 주로 소환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신 박사는 주장했다. 실제 해외입양 친생모는 다양한 여성들이었다. 1980년대 이전 해외입양 상담통계를 보면 사별·이혼·(유배우) 기혼 30대와 20대 후반 여성의 비중이 가장 컸다. 1990년대부터 10대와 20대 초반으로 주요 연령대가 낮아졌다. 미혼모가 아닌 기혼·유배우·이혼·사별·재혼 생모가 입양 상담을 한 경우도 30% 수준을 유지했다.

신 박사는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 개개인의 고통보다도, 여성들이 고통 속에서도 해외입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 시대적 조건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친생모의 주체성에 주목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겪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 제도적 배제와 가부장적 현실은 부정할 수 없고 개선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가 폐지된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 보장으로 이어져야 하듯이, 여성이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다면 입양 이후의 권리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쉬운 연구는 아니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여성들의 경험과 선택을 읽어낼 방법과 자료는 제한적이었다. 어렵게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지만, 몇몇 사례만으로 복잡한 현실을 일반화할 수는 없었다. 타인의 고통을 쉽게 전시하고 싶지 않아서 그마저도 논문에선 많이 다루지 않았다.

5일 오전 서울 충정로 한 카페에서 신필식 여성환경연대 열성회원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n번방’처럼 가학·피학으로 쾌락 얻는 남성들 문제
왜곡된 성문화 개선 위해 뭔가 해야겠다 생각”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이어갈까. 에코 페미니스트답게 그는 ‘돌봄 윤리’를 이야기했다. 자신을 제대로 돌볼 줄 모르고, 인권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한국 남성 문화가 최근 ‘n번방’ 사건 등 잔혹한 성범죄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에코 페미니즘이 말하는 ‘돌봄’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도 포함해요. 한국 남성들은 어떤가? ‘n번방’ 사건 가해자들처럼 가학·피학을 쾌락과 행복으로 여기는 남성들이 정말 많습니다.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요. 그 빈약한 상식이 안타깝고 막막합니다. 젊은 남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왜곡된 성문화가 한국 사회의 속성인 거죠. 남성으로서 제가 남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뭔가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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