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추모식 열려
김상희 국회 부의장 비롯 제자들 모여
추모식 중 선생의 꽃편지 모아 전시회도
이이효재 재단 설립 제안 나와
발인 6일 오전 7시

 

 

이이효재 선생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이이효재 선생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 학문에 여성학을 태동시키고 여성 운동의 선구자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고 이이효재 선생의 추모식이 5일 경남 창원시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이효재 선생의 장례는 여성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고 이이효재 선생에게서 배운 각계각층의 전문가·저명인사 제자들과 여성운동을 함께 한 이들이 참석해 이이효재 선생을 추억했다. 이날 추모식은 온라인으로 생중계 됐다.

이이효재 선생은 1924년 11월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냈다. 1977년 ‘여성 능력 개발을 위한 여성학 과정 설치의 제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국내 최초로 여성학과가 이화여대에 설치되는 것을 주도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을 내며 교수직에 해직되었다가 복직하기도 했다.

1989년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구성에 참여해 공동대표를 맡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 힘썼다. 1997년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을 제안했고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성할당제 도입 등에 앞장섰다.

1996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게 되었으나 시상식 전 “포상자 가운데 전두환씨를 위대한 지도자로 5공의 대통령으로 추대했던 5공 시절 대표적 여성 인물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고귀한 국민훈장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는 무원칙한 선정”이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추모식은 이이효재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수많은 이들의 회상과 추모로 이어졌다.

지은희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은 추모사에서 “몸이 아프실 때 찾아가면 큰 소리로 평화통일을 부르짖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셨다”며 “우리에게 숙제를 남기고 떠나셨다. 우리 모두 더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국회 부의장이자 이화여자대학교의 제자기도 한 김상희 국회 부의장은 “선생님을 뵐 때마다 느꼈지만 저런 선생님이 우리와 한 세대를 함께 한 게 얼마나 행운인가, 저런 여성 지도자를 이 시대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생각했다”며 “우리들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도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날 이 장관은 국민 헌장인 모란장을 전달했다.

이 장관은 “선생님의 업적을 국민훈장 모란장으로 기리게 돼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민주 정부가 국민을 대표해 드리는 훈장을 받아주심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고개 숙였다.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은 “여성의 이름으로 당신을 보낸다. 이이효재로 당신을 보낸다. 함께 해서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한명숙 전 총리는 건강상의 문제로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해 글을 보냈다. 김금옥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대독했다. 한 전 총리는 “가진 모든 것을 쌓아두지 않고 내어주신 분, 생의 끝까지 순수함을 잊지 않고 변화하고 진보하셨던 분이었다”며 “후배들이 닮고 싶은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가시는 길 평온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남인순·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짧은 인사말을 남겼다. 남인순 의원은 “같이 손잡고 꿈꾸던 것, 아직 이루지 못한 것, 여성의 힘으로 평화 통일을 하는 것, 우리가 더 포용적으로 변하는 것, 꿈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은 “2012년 생활동반자법을 고민하던 때, 여성가족부에 갔을 때 기뻐하고 격려해주셨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더 선생님의 모습에 다가가도록 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에서 함께 살기도 했던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이이효재 선생의 생전 추억을 이야기하며 제자와 지인들에게 선생이 보냈던 꽃편지를 모아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을 했다. 이이효재 선생은 청력이 약해진 후 꽃편지와 메모지에 직접 손글씨를 써 많은 제자와 지인들에게 우편으로, 사진으로 보냈다.

오한은 “우리는 많은 편지를 받았고 카드를 받았다. 선생님은 다정한 인사와 함께 꼭 미션을 담아 보냈다. 우리는 모두 유언장을 미리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뜻을 이어간다면 이이효재는 역사에 살아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이효재 재단 설립을 통해 여성 운동 정신을 이어가자는 제안도 했다.

이날 추모식은 이이효재 선생이 생전 자주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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