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샘 감독의 ‘스리스리-타임’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젠더이슈와 성평등 가치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화, 바로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영화 사랑법]은 앞으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영화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스리스리-타임> 스틸컷

 

…여름이었다. 

앞에 무슨 말을 늘어놓든 마지막에 붙여주기만 하면 소설처럼 감성 가득한 글을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문장. 여름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막상 겪을 땐 찌는 듯한 더위에 하루라도 빨리 겨울이 오길 바라지만, 겨울을 맞이할 즈음엔 어느새 또 여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푸르른 녹음과 청량한 하늘, 여름밤의 냄새. 더위에 지쳐 흐물거렸던 건 잊어버린 채 머릿속엔 한껏 미화된 여름만이 남아있다. 

지나간 여름을 떠올리며 그 계절만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박한샘 감독의 <스리스리-타임>(2019)이다. 햇빛 쨍쨍한 여름의 열기와 함께 여성 예술가들의 꿈과 청춘을 기록한 이 작품은 영화감독인 한샘(박한샘), 음악작업을 하는 이듬(전보름), 그리고 배우인 윤아(한보배)를 주인공으로 한다. 

영화를 찍고 싶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대상이 없어 떠돌던 한샘(박한샘)은 강원도에서 우연히 이듬과 윤아를 만난다. 사람이 싫어 자연 다큐만 찍던 한샘은 둘을 만난 뒤 처음으로 프레임 안에 사람을 담고, 한샘의 영화를 계기로 얽혀든 세 사람은 그렇게 스리슬쩍 서로에게 스며든다. 한여름의 바닷가와 젊은 예술가들의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낭만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풀숲, 철물점, 강가, 모래사장 등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리를 채집하는 이듬의 곁에는 항상 윤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찍는 한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듬과 윤아는 환상의 짝꿍 같다. 보고 있으면 ‘여름이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둘의 모습에 한샘도 카메라를 든 것 아닐까. 

<스리스리-타임> 스틸컷

그런데 이듬이 한샘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작업물에 대해 열심히 재잘거리는 것과 달리, 윤아는 때때로 경계심을 발동시킨다. 한샘과 윤아 사이에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한 두 차례 지나가고, 결국 사건이 벌어진다. 윤아가 ‘여긴 넘어오지 마’라고 쳐놓은 선을 한샘이 성큼 밟고 만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배우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개인적인 문제까지 겹쳐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윤아는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윤아를 찾아다니던 이듬과 한샘은 꼬박 이틀이 지난 후에야 윤아를 발견한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한샘은 윤아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 까칠하고 무뚝뚝하지만 한샘의 진심을 져버릴 정도로 무정한 윤아는 아니다. 결국 셋은 다시 하나가 된다.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할 때가 있다. 넘치는 열정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든 그렇게 어설픈 때를 겪기 마련이고, 그때를 잘 보내고 나면 성장이란 걸 하는 것이리라. 끝 모를 더위가 계속될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가을바람이 불쑥 코끝을 스치며 계절이 바뀌듯, 우리도 모르는 새 다음 단계를 밟고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해있다. 청춘은 그렇게 여름과 닮았다. 

<스리스리-타임>은 때론 예민하고 때론 불안하고 때론 천진난만한 청춘을 여름을 배경으로 세 여성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청년’ ‘청춘’하면 남성을 디폴트로 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여느 영화들과 달라 좋았다. 

가을바람이 살랑이는 요즘, <스리스리-타임>을 보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을 달래보는 건 어떨까.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꿈꾸던 그때’로 돌아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도하게 될지도. 내년에는 꼭 강원도의 여름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