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에서 문의가 들어왔다. 그 대학 내에서 미리 정해 둔 징계양정 기준에 따르면 문제되는 사실관계는 무기정학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무리 봐도 무기정학은 좀 과도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설정되어 있는 내부기준을 따르지 않는 것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것은 아닌지 검토해 달란다. 말하자면, 미리 정해져 있는 기준상의 하한선보다도 더 가벼운 양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물음이다.

수년 전부터 성희롱·성폭력 사안에 관하여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가 있다. 바로 ‘무관용(zero-tolerance) 원칙’이다. 이 ‘무관용’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잡기 시작하다 보니 실무현장에서는 종종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딱 봐도 오해가 있을 법한 측면이 있다. ‘무관용’이라고 하니, 무슨 내용의 성희롱·성폭력이든 그 구체적인 가해행위의 경중이 어떠하든 간에 사안이 일단 발생하였다면 가해자를 완전히 ‘갈아 마셔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무관용 원칙 운운하더니 왜 가해자를 배제해 버리지 않느냐!’라는 거센 항의가 들어오는 모습도 때때로 본다.

어떠한 피해가 발생했든 피해가 실제로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적정한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무관용 원칙은 매우 중요한 준칙이다. 절대로 성희롱·성폭력 사안의 은폐 또는 은폐 시도와 같은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지침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다. 비례의 원칙이라고도 표현되는 이것은 공법과 사법 전 영역에서 통용되는 법의 일반원칙이자, 헌법상의 법치국가 원리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거하여 인정되는 우리 헌법상의 일반원칙이다. 최고규범인 헌법상의 원칙이라는 것은 모든 법적 작용에 있어서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헌법의 하위규범인 법률에 따른 원칙보다도 우선하는 원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법원은 이렇게 판시한다. 같은 유형의 위반행위라 하더라도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그 규모나 기간, 사회적 비난 정도, 위반행위로 인하여 다른 법률에 따라서 처벌을 받은 사정이 있는지의 여부, 행위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위반행위로써 얻은 불법적 이익의 규모와 같은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안에 따라 적정한 처분 수위를 정하여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처분의 기준이 법규명령으로서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을 최고한도로 하여 적정한 수위를 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위법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다는 것이 된다. 거꾸로 내부 기준을 그대로 따른답시고 개별적이고도 구체적인 제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그 내용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과잉금지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여 재량권을 일탈·남용하는 것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그리고 비록 성희롱·성폭력에 해당하는 행위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경중이 어떠한지, 가해행위의 반복성은 어떠한지,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해서 가해자가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지, 진정으로 뉘우치면서 반성하고 있는지, 2차 피해를 유발한 것은 아닌지 등 징계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의 내용과 양정을 결정할 때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아주 다양하다.

무관용 원칙에 따른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서 정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도외시해도 좋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무관용 원칙이라는 것은 모든 피해사실에 적정한 조치를 빠짐없이 취하고 사건의 은폐와 같은 그릇된 시도를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발생한 구체적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언제나 무조건 가해자를 영구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거나 반성과 태도 개선의 기회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의미로 오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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