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여성단체들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정부에 촉구
종교·노동·정치 등 각계각층 동참
“낙태는 국가 허락 받을 필요 없는 기본권…
낙태죄 전면 폐지하라” 촉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폐지공동행동은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폐지공동행동은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여성단체들이 문재인 정부에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제 행동의 날은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건강과 삶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제도에 맞서 전 세계 여성들이 저항하고 연대하는 날이다.

이날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여러 여성단체로 구성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28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법 개정 방향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정부는 임신중지를 처벌해왔던 형법 제27장을 전면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 14주 이내 임신중지만을 전면 허용하고 이후 주수에 따른 처벌 조항을 존속시키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낙폐는 “이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처벌로서 국가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심각한 역사적 후퇴”라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임신중지를 허락하는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문재인 정부가 성과 재생산 과정 전반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및 법·제도 개선의 역할은 도외시한 채 오히려 역사를 후퇴시키려 한다면 ‘66년만의 낙태죄 폐지’에 기대를 걸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했던 모든 이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전 세계 여성들과 연대하는 한편 성과 재생산의 권리가 보장되는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의 사회로 지체 없이 나아가기 위해 계속해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대표)은 “여성들에게 임신중지는 출산만큼 무거운 결정”이라며 “정부는 건강권 등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더 불평등한 결과를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력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의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낡은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며 “여성의 삶과 생명을 선별하는 역사, 여성 폭력 역사를 갱신해 구체적인 법과 정책으로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폐지공동행동은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폐지공동행동은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김하나 전도사(성과 재생산 크리스천 포럼, 섬돌향린교회)는 “오늘도 여성의 안녕을 묻는 것이 두려운 하루”라며 “정부는 무늬만 낙태죄 폐지인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제도를 남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전도사는 “여성의 건강은 허락이 필요하지 않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며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지 국민의 중재자가 아니다”라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며 조력하려는 노력을 보여라”라고 규탄했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국가는 낙태죄 폐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조급한 이때 헌법 조항을 폐지하지 않고 임신 14주 이내 임신중지만을 전면 허용하는 안을 만들고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접했다”며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 국가의 최선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진 활동가는 “국가는 생명선별 인권침해 역사를 제대로 사과하라”라며 “우생학적 질환은 허용사유를 두고 강제 불임시술, 낙태시술을 강요했다. 존엄하지 못한 생명은 누구인가”라고 비판했다. 또한 “국가는 성과 재생산권리를 실질적 제도로서 보장해야 한다”며 “사회적 배제를 해소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성과 재생산권리를 바라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수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자본주의 사회는 남성을 기본값으로 설계된 사회”라며 “조합에 여성이 많이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임신을 하면 남성에 초점 맞춰진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라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권 부위원장은 “일본에서는 현장에 임신라인, 수유라인을 제도를 마련해 여성이 임신하면 저녁 5시에 퇴근하고 생산현장에 탁아소를 구비해 업무 중간 수유를 가능하도록 했다”며 “적어도 한국 사회 생산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고 수유할 수 있는 정도로 현실을 먼저 바꿔놔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성미선 녹색당 운영위원장은 “낙태죄 폐지를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성 운영위원장은 “정치와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건강권을 제한하려는 행위를 선언하고 있다”며 “대한민국도 여성의 임신중절과 건강 등 결정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급히 정확한 성교육과 성평등 제도 개선 및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모낙폐와 함께하고 있는 장혜경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책위원장은 “정부의 대책은 여성이 낙태할 수밖에 없는 경제, 사회적 조건을 눈 감은 것”이라며 “또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장 정책위원장은 “별다른 대책 마련도 없이 주수에 따라 합법적 낙태와 불법적 낙태를 구분하고 있다”며 “완전한 낙태죄 폐지를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피켓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모낙폐는 ‘청와대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날 박은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은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함께한 여성 100인의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공동선언문을 대독했다.

다음은 공동선언문 전문.

 

<공동선언문>

“그 어떤 여성도 ‘낙태죄’로 처벌 받지 않도록”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 하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변화는 두려운 것일 수 있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2005년 호주제를 폐지했습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 격렬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여성들이 호주제로 인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2019년 4월 11일, 형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인 오늘, 우리 역시 함께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여성의 결정을 신뢰하는 바탕 위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국가는 여성을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성평등교육과 피임교육을 모든 시민에게 실시해야 합니다. 또한 원치 않는 임신 예방, 임신중지 접근성 확대, 안전한 의료지원 체계 마련 등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되어야 합니다.

호주제를 폐지했다!! 낙태죄도 폐지하라!!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