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최영미 시인 등
여성 100인 ‘낙태죄’ 폐지 촉구선언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가 30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12월30일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가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여성신문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100인이 이번에는 ‘낙태죄’ 폐지 촉구에 나섰다.

여성사회교육원·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가 9월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하루 앞둔 27일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함께한 여성 100인의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선언’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안 입법을 마련하라고 정했다. 현재 시한이 96일 밖에 남지 않으나 여전히 대체 입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한 헌재의 결정 취지와 달리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 이내’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정부의 움직임은)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끌어낸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를 축소, 왜곡하는 것이며 특히 그동안 실질적으로 사문화되었던 낙태죄를 오히려 부활시키는 여성인권에 대한 심각한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05년 폐지된 호주제도와 마찬가지로 ‘낙태죄’ 또한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상징적인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폐지는 호주제 폐지에 이은 여성 시민권의 문제임을 천명하고 형법상 ‘낙태죄’ 전면 삭제의 필요성에 무게를 싣고 올바른 입법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면서 호주제 폐지 운동에 나섰던 여성 100인이 낙태죄 폐지 촉구 선언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자 여성계 인사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여성환경연대 대표),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당시 여성부 장관),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유경희 그리다협동조합 대표(전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자 여성계 인사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여성환경연대 대표),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당시 여성부 장관),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유경희 그리다협동조합 대표(전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이번 100인 선언에는 2005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여성단체 활동가와 각계 전문가, 성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시인, 목사, 의사, 법학자,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100인이 참여했다.

최초 여성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최영미 시인, 노혜경 시인,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 이경옥 여성의당 경남도당 위원장,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 등이 1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여성 100인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호주제 폐지에 대해 격렬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며 “오히려 많은 여성들이 호주제로 인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는 여성을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성평등교육과 피임교육을 모든 시민에게 실시해야 한다”며 “원치 않는 임신 예방, 임신중지 접근성 확대, 안전한 의료지원 체계 마련 등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선언에 참여한 노혜경 시인은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은 오로지 가임기 여성만이 감당하고 누리는 특수한 인간현상이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여성이 책임과 권리를 다 가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임신출산과 관련된 어떤 교육도 안전장치도 제도적 도움도 먼저 마련할 생각도 없으면서, 한 사람이 자신의 많은 것을 걸고 결단하는 일을 범죄시하기까지 한다면, 여성을 오로지 인구증가용 도구로 바라본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시민이 행사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라며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면, 여성시민들의 삶과 인권은 전방위적으로 제한되므로 여성에게도 국가에게도 막심한 손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을 존중한다면, 가장 먼저 자기 몸 속에서 그 태아를 가장 깊이 사랑하는 여성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국가는 임신주수 제한하여 낙태를 통제하는 구시대의 정책을 폐기하고, 특히 비혼모, 십대여성, 저소득 여성 등 취약한 여성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공동 선언 전문. 

“그 어떤 여성도 ‘낙태죄’로 처벌 받지 않도록”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변화는 두려운 것일 수 있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2005년 호주제를 폐지했습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 격렬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여성들이 호주제로 인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2019년 4월 11일, 형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인 오늘, 우리 역시 함께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여성의 결정을 신뢰하는 바탕 위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국가는 여성을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성평등교육과 피임교육을 모든 시민에게 실시해야 합니다. 또한 원치 않는 임신 예방, 임신중지 접근성 확대, 안전한 의료지원 체계 마련 등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되어야 합니다.

 

호주제를 폐지했다!! 낙태죄도 폐지하라!!

 

2020. 9. 28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함께한 여성 100인의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선언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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