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vs 여자’ 또는
‘청년세대 vs 기성세대’라는
이분법적 갈등 관계로 몰지 않아

 

‘88만원 세대’, ‘수저계급론’, ‘N포세대’와 같은 청년 세대 담론이 회자되는 오늘날, 더 이상 청춘들은 ‘아프니깐 청춘이다’란 말로 위로 받지 못한다. 청년들의 삶과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청춘드라마의 제작이 거의 없는 지금의 방송 환경에서 청년들은 드라마에서조차 위로와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청춘드라마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면서 관심을 얻고 있다. 그 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하 ‘브람스’)는 음악학도인 29살의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이 겪는 혼란과 삶의 무게를 진중하게 다루면서 또래 세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브람스’는 29살 동갑내기인 채송아와 박준영을 중심으로 음악과 삶에 대한 그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다. 음악적 재능은 별로 없지만 바이올린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노력하는 채송아와 뛰어난 재능으로 월드 클래스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박준영이라는 인물이 우연한 만남 속에 서로 호감을 갖고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담아낸 로맨스이다. 그 과정에서 청년 세대들이 사회 진출을 준비하면서 겪는 현실적 문제들을 녹여내면서 ‘브람스’는 여타 로맨스 드라마와 차이를 보인다.

드라마는 음악 전공자들의 이야기이지만 클래식에 문외한인 청년 시청자도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진출의 문턱에 다다른 29살의 누군가의 모습으로 쉽게 치환된다.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도전과 꿈 자체만으로도 지지받던 20대와 사회생활에 진입하여 안정된 삶을 시작해야할 30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20대의 끝자락에서 ‘계란 한 판’이라는 말로 30대의 시작에 대해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고, ‘서른 즈음에’를 열창하고, ‘잔치는 끝났다’고 얘기해왔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사회 진출과 30대 진입이라는 인생의 전환기에 직면한 이들을 통해 새롭고 낯선 세계로 진입을 앞둔 수많은 경계에 선 이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겉보기에 우아한 음악의 세계는 성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가 이루어지고, 부모의 경제력과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곳이다. 주인공들은 재능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질 것을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 속에 진로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다. 또한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왔지만 집안 사정으로 연주가의 길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로 뛰어든 현호의 모습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하는 청년들의 좌절의 순간을 보여준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풋풋함과 열정으로 어떤 시련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기존 드라마가 보여준 청년상을 비켜간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습은 꿈이 있지만, 재능과 비례하지 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삶의 무게에 대해 공감을 자아낸다.

대개 청춘드라마는 오해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로맨스와 주인공을 방해하는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축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로맨스와 청년 세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던 ‘여자 vs. 여자’와 ‘청년세대 vs. 기성세대’라는 이분법적 갈등 관계로 몰아가지 않는다. ‘브람스’에도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여성이 등장해 갈등을 유발하지만, 조용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담담히 표현하는 송아의 솔직함은 남녀 주인공들 사이에 발생하는 오해를 차단한다. 또한 6각 관계라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민성과 정경이라는 대립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여성들 간의 음모와 술수는 중요한 장치로 다뤄지지 않는다. 주인공 송아는 민성의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정경과의 마스터 클래스 레슨에서는 둘 사이에 진심어린 조언과 대화가 오고간다. 이는 단순히 대립관계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을 통한 여성들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드라마는 청년세대가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기성세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부러 주인공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만 단단히 성숙하기를 바라는 이사장과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송아의 아버지, 준영을 누구보다 아끼는 경후재단의 팀장, 딸을 걱정하는 정경의 아버지 등의 긍정적인 기성세대들의 모습이 다수 등장한다. 이는 과거 청년의 시절을 보낸 인생 선배로서의 기성세대와의 공존의 가치를 제시한다.

오히려 드라마의 갈등을 유발하는 이들로 겉으론 제자를 위하지만 자신들의 명예와 이해를 위해 주인공들을 이용하려는 대학 교수들이 그려진다. 이들은 끊임없이 ‘급’을 언급하고, 주인공들은 재능과 재력으로 형성된 ‘계급 사회’의 속박에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시선에서 보면 ‘급’이 다른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 준영과 학교 오케스트라 끝자리인 송아의 로맨스는 공고한 계급적 구분을 깨뜨리는 하나의 상징으로 그려질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봉건 시대의 계급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계급을 드러내는 동시에 깰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브람스’가 남은 회차에서 잔잔한 로맨스 속에 청년들이 맞닥뜨린 삶의 무게를 진중하게 보여준다면 청년 세대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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