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얼마나 많은 여자가 성매매하다 죽는지 아니? 뉴스에도 안 나와! 너무 많아서. 너 하늘이 살려준 애야. 절대 잊지 마." '비밀의 숲' 시즌 1에서 배두나가 연기했던 한여진의 이 대사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그렇게 성착취 현장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나 싶었다. 사진=tvN

 

“너 얼마나 많은 여자가 성매매하다 죽는지 아니? 뉴스에도 안 나와. 너무 많아서. 너 하늘이 살려준 애야. 절대 잊지 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 1에서 배두나가 연기했던 한여진의 이 대사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그렇게 성착취 현장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나 싶었다. 반성착취 운동을 하면서 여성들의 죽음을 끊임없이 접했지만 내가 보고들은 일 또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9일은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20주기였다. 2002년 개복동 화재 참사에까지 이어진 여성들의 죽음 속에 성착취 현장의 모습이 간신히 드러났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성들의 죽음이 있었다. 2004년 9월 23일 제정된 성매매 방지법은 그토록 무수히 많은 여성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성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결지에서 죽어 간 여성들이 디지털 성착취의 현장에서 또다시 죽어나가고 있는 그런 현재진행형 말이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저자이자 성착취 현장의 생존자 봄날은 “내가 20여년 간 경험한 성매매 업소는 나를 때린 아버지와 어린 나를 성추행했던 삼촌과 나를 강간하며 웃던 그놈, 임신한 나를 버리고 간 군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고 말한다.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오직 착취되는 방식으로만 생존을 허용하는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어진다. 삶이 막다른 길로 몰릴 때 길 하나만 건너면 그것이 벼랑 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여성들을 몰아넣는 것은 누구인가?

여전히 압도적인 한국 사회 성산업 규모를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성착취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코로나 시국에도 성착취 업소로 발길을 돌리는 남성들, 피해 여성들에 대한 재난지원은 염두조차 두지 않는 국가, 성착취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유흥업소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도 그 불법성에는 눈감고 있는 지자체, 여성이 자살기도를 해서 112에 신고를 하더라도 “성매매를 하면 쌍방처벌된다”는 법 조항만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경찰, 조건만남을 한 여성에게 벌금형을 언도하며 성착취를 피해로 보지 않고 여전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검찰과 법원을 보면서, 무수한 여성들의 희생과 증언으로 만들어진 성매매 방지법의 본래 취지를 되묻게 된다. 성매매 방지법 제정 16년이 흐른 지금, 성착취 현장의 위험성은 여전히 간과되고, 피해자들의 숫자는 여전히 지워지는 이 현재진행형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성매매 방지법은 성착취 현장의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성착취의 본질인 알선과 구매를 차단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그 입법 정신은 수요를 차단하고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서 보호하는 ‘노르딕 모델’이다. 적어도 피해여성 보호체계에 있어서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르딕 모델을 법제화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을 처벌하는 관행은 과거의 윤락행위등방지법과 다를 바가 없다. 성매매 방지법이 그 실효성을 가지려면, 성매매를 폭력이자 착취로 인식할 수 있는 법과 제도로 만들어가야 한다. 성매매 방지법 제정 16년, 한국사회는 이제 전면화된 노르딕 모델 도입으로 새롭게 응답해야 할 때이다.

* ‘노르딕 모델’은 성매매를 줄이고 성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수요에 대한 처벌과 피해여성에 대한 보호를 법제화한 것으로 1999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되어 유럽 사회와 전 세계의 국가들이 성평등 모델로 도입하고 있다. 

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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