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잘 아는 가정의 고등학교 입학생 아들이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한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발칵 뒤집혔다. 밤 1시가 되어도 들어오질 않아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밤새 수백통의 전화를 부부가 번갈아 가며 걸었지만 아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 났다는 것을 느꼈다. 집 근처에서 무슨 사고라도 있었는가 싶어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함께 있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헤어지고 난 이후 동선을 따라 주위를 샅샅이 흩어 보았다. 하지만 이 역시 헛수고였다. 부부는 어쩌면 아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눈물로 헤매며 아들을 찾아다녔다. 살아만 있어달라고 울부짖었다.

아침 해가 밝아 오던 시각.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부부는 직감적으로 병원 영안실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전화를 건 병원 직원은 아들은 폭행을 당해 외상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부부는 밤새 한잠을 뜬 눈으로 지샜지만 아들을 볼 수 있다는 데에 감사를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함께 있었던 친구도 폭행으로 얼굴과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아들과 친구는 시내에서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집까지 15분 정도면 되는 거리였기에 아들친구는 운동 삼아 걷자는 제안에 선뜻 동의하고 걸었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은 조금 돌아서 가지만 가로등이 잘 켜진 길이 하나 있었고, 또 다른 길은 공원묘지를 통해 지나가는 길은 짧지만 좀 어두운 것이 흠이었다. 하지만 둘은 어릴 때부터 어린이 축구클럽에서 훈련을 해 몸이 잘 단련되고 몸집도 큰 편이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어두운 곳 어디선가에서 불쑥 두 사람이 나타나 세웠다. 다짜고짜 전화기와 지갑을 달라고 해 갑자기 위협하며 달려들어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돈과 전화기로 만족하지 않고 걸치고 있는 옷을 벗게 하고는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밤이 지새도록 괴한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했다. 그들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해가 밝을 즈음 두 괴한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아들과 친구는 큰 길로 내 달렸다. 초가을 날씨라 밤에는 영상 7~8도 내려가 매우 싸늘한 정도로 차가운 아침이 이었다. 다행이 지나가는 행인이 있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바로 달려온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바로 출동해 헬기까지 동원하며 도주하는 두 범인을 현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체포했다.

부부는 아들과 친구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 하는 것을 다 듣고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고 했다. 아들과 친구가 당했던 그 고통과 수모를 생각하면서 반드시 범인들이 사법적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데 동의를 했다. 출감 후 보복행위가 두려워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들과 친구, 그리고 부모들은 가혹행위자들이 죗값을 꼭 치러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다행히 아들과 친구는 병원 치료 후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 날 아침 TV와 라디오 뉴스에는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저녁신문에는 상세하게 사건의 전말이 보도되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스톡홀름 시내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다. 국민의 사생활보호에 매우 민감한 국민들은 국가나 지자체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자체 판단으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나서면 지역주민들이 들고 일어서 반대를 해 결국 설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강도, 폭력, 총격사건이 벌어져도 범인을 잡는 것은 제보자가 있지 않는 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살인사건의 25퍼센트 밖에 해결하지 못하고 75퍼센트는 미해결사건으로 남는다. 이번 사건도 길거리와 공원 등 공공장소와 밤 으슥한 곳에 감시카메라만 설치되어 있었더라도 범인들은 쉽게 강도 및 폭력행위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범죄예방청과 경찰에서는 범죄예방목적으로 더 많은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도 국민들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감시 받는 사회로 갈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이 결과 스웨덴 전역에 33,000 여개의 감시카메라만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스웨덴의 땅 면적이 커 이보다 최소한 10배 이상은 더 설치되어 있어야 범죄예방 효과와 범죄사건해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개인생활의 감시와 노출로 인간기본권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유사한 범죄와 총격사건과 살인사건 등이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국민은 감시카메라설치에 부정적이다. 사적 자유가 침해된다는 이유다. 코로나 확산예방과 건강을 위해 국가가 마스크를 쓰도록 권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국가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지시하는 것은 개인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에서 마스크 착용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인권의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국가들이 한국의 방역체계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결국 국가의 통제와 감시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라는데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국민의 안전권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인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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