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 목사님의 답변 “경미, 아임 게이”
[회색지대] 목사님의 답변 “경미, 아임 게이”
  •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 승인 2020.09.25 06:10
  • 수정 2021-01-05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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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교회에서 배운 것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중요한 준거 기준이 되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석하는데 쉽고 간명한 기준이 있어 편했다. 판단을 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힘이 넘쳤다. 믿음이 강한 자, 신념이 깊은 자인 것 같아 그런 내 자신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의 가르침’ 을 잘 구별하지 못하던 시절의 일이다. 

저자가 다녔던 미국 시카고의 한 교회 ⓒ김경미 

1이라고 배웠던 것이 1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이슈도 그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에서 동성애는 나쁜 것이고, 사람들이 성적 쾌락을 쫓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찾게 되는 거라고 가르쳤다. 또한, 성소수자는 나쁜 죄를 저지른 죄인 혹은 어서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야할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당시 교회의 여러 가르침에 대해서 크게 의심을 하지 않던 나로서, 이 이슈 역시 큰 저항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았다. 

2008년 미국 시카고에서 6개월 정도 머물 때, 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아름다운 교회 건물과 오랜 역사에 이끌려 나가게 되었다. 몇 주 예배를 드리던 중, 생경한 풍경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성 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그 교회가 가진 따뜻함 때문이었을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 체계와 다른 세계를 만났을 때의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매주일마다 계속 참석하게 되었다. 

교회 나간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전체 티타임이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들어보니, 교회가 소속된 교단 총회에서 성소수자를 성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론내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긴급히 마련된 자리라고 한다.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한 여성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의 아이는 성소수자입니다. 비록 교회는 내 아이를 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라며 울었다. 옆에 있던 아들이 엄마를 위로했다. 또 다른 여인이 말을 이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어느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이를 위해 슬픔을 이기며 열심히 살았어요. 그 아이마저 어느날 하늘나라로 가버렸어요. 도저히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던 어느날,  사랑스런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어요. 그 아이로 인해 다시 행복을 찾았고, 일상을 살아낼 수 있었어요. 그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되었어요.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회의 판단이 맞다면 하나님은 저에게 왜 이런 아이를 주신걸까요? 그 아이로 인해 행복했던 시간들은 거짓이었나요? 저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교회에 대한 엄한 꾸짖음이 나지막한 말 속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김경미
 저자가 다녔던 미국 시카고의 한 교회 ⓒ김경미

이들의 고백은 성소수자들을 나쁜 사람, 회개해야할 존재로 생각해왔던 나의 믿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그들도 나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나와 같은 성경을 보고, 나와 같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신앙 고백과 그들의 신앙 고백 간에 다른 점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왜 지난 날, 내가 다녔던 교회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만을 가르쳤지,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알려주지 않았을까? 교회에도 화가 났고, 교회의 가르침을 의심없이 수용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며칠 후 그 교회 담임 목사님께 티타임을 요청했다. 새로운 성도들에게 열려있는 아이스 브레이킹 같은 시간이었다. 대화 가운데 “목사님은 어떻게 성소수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시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내내 궁금했었다. 그 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경미, 아임 게이(I'm gay).” 놀라지 않은 척 노력했지만 내 눈동자가 잠자리 눈이 되는 걸 목사님도 알았을거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청소년 시기를 지나며 내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나를 인정할 수 없어 무척 어려운 시간을 보냈어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정서적으로 많이 학대했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면서, 성소수자로서의 나를 오히려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렇게 목사가 되었어요.” 성소수자들이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여 이성애자로 돌아오게 된다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서사와 정반대의 전개였다. 내가 들어왔던 것과 내가 마주친 사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 아득했다. 

교회 외관 벽에 걸려있던 배너 ⓒ김경미
교회 외관 벽에 걸려있던 배너 ⓒ김경미

지난 18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신교 교단들의 총회도 열린다고 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개신교 교단 총회에 참석하는 목사님들,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제일 열정적으로 설파하고 다니시는 목사님들을 모시고 시카고 교회 티타임에 참석하고 싶다. 그리고 여쭤보고 싶다. “목사님, 저 분들이 신실한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라고. “하나님이 저 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라고 말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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