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크레인, ‘푸른 수염’ 그림책 삽화, 1875년. 사진=위키피디아
월터 크레인, ‘푸른 수염’ 그림책 삽화, 1875년. 사진=위키피디아

 

유럽의 구전 민담인 ‘푸른 수염’의 주인공인 푸른 수염은 아내 연쇄 살해범이다. 푸른 수염은 원하는 여성들을 아내로 얻고 아내가 자신의 경고를 어기면 살해한다. 유럽의 푸른 수염뿐만 아니라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첫날을 보낸 새 왕비를 다음날 매일 사형하는 왕은 아내 연쇄 살해의 극단을 보여준다. 푸른 수염의 마지막 아내는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나고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드 왕비는 1001일간 왕을 매료시키는 이야기 능력으로 자신도 살아나고 왕의 왕비 연쇄 살해를 멈추게 한다. 이 같은 구전 민담들은 여성들에게 권력과 부를 소유하는 남성들을 경계하고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선 기지로 위기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17년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은 현대판 ‘푸른 수염’같이 권력과 부를 이용해 연쇄적으로 여배우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다가 피해자 다수 여성들이 연대한 ‘미투’로 기소되었다. 침묵을 깨고 미투 혁명에 나선 여성들은 성폭력을 종식시킬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지만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은 여전하고 전 남편이나 남편, 또는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는 여성들은 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19년, 전해에 비해 21% 증가한 146명의 여성들이 그들과 친밀한 관계의 남성들에게 살해당했다. 2,5일에 여성 한 명이살해당하는 충격적인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도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고 매년 대략 100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그들의 남편이나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당하고 있지만 프랑스와 달리 여성 살해를 심각한 문제로 다루는 기사는 거의 부재하다. ‘푸른 수염’과 같은 여성 살해를 전하는 우리 민담도 미디어의 ‘침묵’과같이 전해지지 않는다.

유럽에선 아내 연쇄 살해범인 푸른 수염 이야기가 지난 수백 년간 여러 쟝르의 작가들, 작곡가와 영화감독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면서 단편으로 소설로 오페라, 발레,연극과 영화로 변주되었는데 그만큼 아내들을 연쇄 살해하는 극단적 젠더 폭력이 다양한 관점의 재창착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전래민담인 푸른 수염 이야기를 처음 ‘푸른 수염’(1697)으로 쓴 사람은 프랑스의 ‘샤를 페로’였다.

페로의 푸른 수염은 거대한 성에 사는 성주이다. 그는결혼한 후에 잠시 성을 떠난다면서 아내에게 성의 방들을 열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준다. 그러면서 다른 방들은 다 열어도 되지만 절대로 한 방만은 열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가 떠난 뒤에 호기심을 못 참고 아내는 열지 말란 방문을 열어보는데 푸른수염의 전 아내들의 시체가 벽에 박혀있고 피도 흥건하다. 아내는 경악해서 열쇠를 떨어뜨리는데 열쇠에 묻은 피는 지워지지 않는 마법이 걸려있어서돌아온 푸른수염에게 금지된 방문을 연 것이 발각된다.분노한 푸른수염에게그의 전 아내들과 마찬갖지로 살해당할 위협에 처해졌을 때 아내는 마지막기도를 하겠다면서 시간을 번다. 그러는 동안 그의 형제들이 달려와서 푸른 수염을 죽이고 아내는 푸른 수염의 재산을 상속받아 자매의 결혼 지참금도 주고 남자형제의 신분 상승도 시켜주고 좋은 남자와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쓰고있다. 17세기 말의 페로의 푸른수염과 달리 20세기 초,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은 마지막 반전 없이 네 명의 아내가 모두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샤를 페로의 마지막 아내는푸른 수염의 부를 보고 결혼하지만 20세기 벨라 바톡 오페라의 젊은 아내는 푸른 수염을 진실되게 사랑한다. 아내는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고통에도 불구하고 남편 내면의 깊숙한 바닥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한다.

푸른 수염은 7개의 잠겨진 방으로 상징되는 내면의 비밀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지만 아내의 끈질긴 요구에 방열쇠를 하나씩 넘겨 그의 비밀을 열게 해준다. 고문의 방, 살상 무기의 방부터 눈물의 호수방까지 푸른 수염의 정체가 드러나는 피 묻은 이미지에 아내는 경악하지만 마지막 방까지 연다. 거기엔 푸른 수염의 전처들인 아침의 아내, 정오의 아내, 저녁의 아내가 벽에 부착되어 있었고 젊은 아내도 결국 ‘밤의 아내’가 되어 전처들같이 생명을 잃고 갇힌다. 부과 권력을 쥔 남성의 폭력 종합 세트를 고발하는 바톡의 오페라는 여성의 눈먼 사랑이 자신의 죽음을 부른다고 보여주면서 17세기 말 페로의 마지막 아내가 누리는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없앤다.

마거릿 애트우드, 앤절라 카터와 조이스 캐럴 오츠 등을 비롯한 여성작가들도 푸른 수염을 다시 썼다. 그들은 여성을 주인공 화자로 쓰고 ‘여성들의 호기심’을 경고해왔던 남성 작가들과 달리 불륜에 중점을 두거나 살해 위기에 처한 아내를 구하러 오는 남자형제를 엄마로 바꾸거나 푸른 수명이 열지 말라는 방에 관심조차도 없어서 남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 여성 살해 플롯을 무화 시키는 변주를 보여준다. 그들은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고 카트린느 브리아 감독은 살로메의 주문에 쟁반에 받혀온 요한의 머리처럼 목에 베인 푸른 수염의 머리가 쟁반에 올려진 이미지로 끝맺는 푸른 수염 영화를 만들었다.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과 여성 살해가 지속되는 한 푸른 수염은 여성들의 글쓰기로 개작되어야 할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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