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체성의 심리학(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저자
박선웅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선택한 일은 최대한 열심히…아니다 싶으면 X표로 지워나가기”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 여성신문에서 박선웅 교수는 "코로나 블루로 통해 긍정적인 시점으로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도 다시 돌아보고 검증할 수 있던거 같다"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박선웅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홍수형 기자

한국은 지난 28년간 소득 수준이 4배 넘게 늘어났지만 행복 지수는 여전히 낮다. 지난 5일 한국경제학회의 간행물 ‘한국경제포럼’에 실린 ‘행복지수를 활용한 한국인의 행복 연구’에 따르면 1990년과 비교해 2017년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그렇다면 행복의 중요한 원인은 무엇일까. 박선웅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정체성 문제’라고 진단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여성신문 본사에서 만난 박 교수는 ‘나다움’을 찾았을 때 비로소 본인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하며 살 수 있고 그러면서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공군장교·국회의원 보좌진·교직원 등을 거치며 본인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가 정체성의 심리학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유학 당시 석사 지도교수가 이 분야를 다뤘다. 나중에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논문을 썼지만 이 주제로는 평생 먹고 살고 싶지 않았다. ‘정체성’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 주제이며 우리의 행복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원인도 정체성을 찾지 못해서라고 할 수 있다.”

박선웅 교수는 정체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슈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정체성의 심리학(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을 저술하게 됐다. 

박 교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체성을 찾기 힘든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를 척도로 나타낸다면 ‘매우 나쁨’에서 벗어난 ‘나쁨’이라고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몇 년간 히트를 친 책이나 블로그 글을 보면 ‘나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그렇다.”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 여성신문에서 박선웅 교수는 "코로나 블루로 통해 긍정적인 시점으로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도 다시 돌아보고 검증할 수 있던거 같다"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박선웅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홍수형 기자

나를 찾는 방해 요소, ‘인식 자체의 부족’과 ‘사회적 안전망 부족’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인식 자체의 부족’과 ‘사회적 안전망 부족’이라고 꼽았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해진 것은 최근이다. 7080세대들은 먹고 사는 것이 가장 급했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왔다. 경제적으로 풍요해진 지금은 생존의 걱정이 덜하다. 예전에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지만 이제는 해당 주제가 중요해졌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 정부에서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에게는 스스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에 대한 경제적 안전성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는 ‘갭이어’(gap year)라고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 년 정도 쉬는 시간이 있다. 이런 것이 곧 사회적 안전망인데 한국은 없다. 창업을 하나 하더라도 실패할 수도 있는데 동시에 인생도 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면 쉽게 용기 내기 어렵다.”

이처럼 젊은 세대들이 정체성을 갖기 어렵다. 박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젊은 세대를 이해한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이었던 대학이 이제는 총학도 없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과대표를 하기 꺼려하고 자신의 취업을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요새는 대학생이 아니라 취준생(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생은 대입준비생, 중학생은 예비고등학생이다.”

나를 찾으려면…‘자신이 선택한 일을 열심히 해보는 것’과 ‘인생의 X표 치기’

‘나다움’을 위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열심히 해보는 것’과 ‘인생의 X표 치기’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기억을 가장 어렸을 때부터 떠올려 보며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다. 단, 유의할 점은 남이 아닌 내가 직접 선택해서 열심히 해보는 것이며 경험해봤을 때 아니다 싶으면 X표를 치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타인과 잠시 멀어져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이러한 낯선 상황 속에서 나에 대해 깨달은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해보면 정체성을 찾는데 효과적이다.”

그의 앞으로의 계획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수십 개 교향곡보다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 9권만 더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웃음) 현재는 두 권정도 구상 중인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과대평가되고 있는 ‘행복’이나 ‘자존감’이라는 주제들에 대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위한 정체성 확립 프로그램 관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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