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오른쪽 시력 잃은 시각장애인
비영리 1인 법률사무소 열고
인권침해 피해자 곁에 서는
‘전업’ 공익 변호사
올해 ‘청년일가상’ 수상
“승소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하던 피해자의 변화”

김예원 변호사 ⓒ홍수형 기자
김예원 변호사 ⓒ홍수형 기자

 

장애인권법센터는 인권침해 피해를 겪는 장애인·여성·아동의 소송을 무료로 지원한다. 김예원(38) 변호사는 센터를 설립한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이다. 상담부터 서류 작업, 정책 연구까지 모두 도맡는다. 지난 10년간 장애인을 비롯해 여성·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학대, 차별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뛴 그는 올해 ‘제12회 청년 일가상’을 수상했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인 김용기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일가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공익 변호사이면서 사회복지사와 성폭력전문상담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사무실인 서울 서초와 세 아이와 함께 사는 전남 광주를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의 목소리는 생기가 넘친다.

“24시간 풀가동 중이죠. 하하. 하루에 전화만 60통이 올 때도 있어요. 그런데 별로 힘들진 않아요. 저는 일을 맹렬하게 할수록 에너지를 얻거든요. 워커홀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많아서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이들과 있을 때는 일에서 관심을 털어내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김 변호사는 MBTI 검사 결과는 매번 달랐지만 성향 만큼은 늘 외향형(E)이 나왔다고 했다. “E 성향이 남한테 바른 말하기 좋아하고 오지랍 넓고, 공감능력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딱 저였어요.” 늘 씩씩한 그에게 남편(강지성 판사)은 ‘명랑 김예원 선생’이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다. ‘시각장애인 변호사’.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오른쪽 시력을 잃은 그는 의안을 꼈다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장애의 이유조차 모르고 자라다 중학생이 돼서야 의료사고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큰 불편을 느끼거나 불만 없이 자랐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법대를 가고 싶어 따로 한자 공부를 할 정도로 진지했다. 하지만 약자의 곁에 서기 위해 변호사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

“판사나 검사는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하지만, 변호사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 곁에 서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김예원 변호사는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예원 변호사. ⓒ홍수형 기자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41기) 수련 중 더 많은 공익 전담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41기 동기들과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공변’(공익변호사)를 지원하는 ‘공익법률기금’을 만들었다.

“현장에 가보니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인권침해를 겪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더 놀라운 것은 피해자는 그것이 피해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어요. 피해사실을 안다고 해도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의지조차 없는 분들도 있어요. 모르면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서는 그냥 지나칠 순 없었어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김예원 변호사는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김예원 변호사 ⓒ홍수형 기자

 

사법연수원 수료 뒤 곧바로 공익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동천에서 장애인 인권 침해 사건에 주로 참여했다. 지체장애인 노동자가 착용하는 의족 파손도 업무상 재해로 받을 수 있도록 한 대법원 판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2014년부터 3년간 서울장애인인권센터에서 일하며 1000건 넘는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을 접했다. 당시에는 ‘염전 노예’ 사건 등 노동 착취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던 시기였다. 서울시 조직에 묶여 있다보니 관련 사건을 맡지 못하는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2017년 조직을 떠나 장애인권법센터를 세웠다. 

장애인권법센터는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 운영비는 ‘공익법률기금’ 지원을 받고 외부 강연비, 연구 용역비 등으로 충당한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는 “혼자 다 해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얽힌 실타래 같은 사건도 단체, 활동가들과 연대하다 보면 술술 풀어지기도 한다. ‘연대의 힘’이다. 김변호사는 피해자 지원에서 느끼는 연대와 공감에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사건 초반에 만나는 피해자들은 굉장히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도 합니다. ‘제가 돕겠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면 피해자들이 어느 순간 속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해요. 나중에는 법정에서 진술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하게 되죠. 당사자와 제가 깊이 공감할 때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힘을 내는 모습을 볼 때 저도 힘이 납니다. ”

김 변호사는 너와 나의 다름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기’ 하지 말자고 권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교 밖과 학교 안, 지나친 구분짓기는 보이지 않는 ‘벽’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사고를 단순화해요. 나누기가 아닌 함께 살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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