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공판에서 선고를 내리고 있다. ⓒ대법원
김명수 대법원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공판에서 선고를 내리고 있다. ⓒ대법원

대법원이 지난달 27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아동·청소년을 속여 성관계에 동의하게 만들었다면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기존의 대법원 판결을 바꿨다. 

기존의 2001년 대법원 판결은 ‘위계’에 대해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이를 이용해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고, 여기서 ‘오인, 착각, 부지’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것으로 제한된다고 매우 좁게 그 범위를 좁히는 해석을 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이 20여년 만에 최근의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바뀌었다.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 있어서의 ‘위계’의 의미가 성관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 외에도 성관계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로 하여금 오인, 착각, 부지 등을 일으켜 성관계를 한 경우까지 포함이 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와 같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서 반갑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판례가 바뀌기까지 20여년의 긴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생각됐기 때문이다.

2004년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는 가정폭력 등의 위기가정에서 가출한 16세 여자청소년을 상대로 ‘사랑한다, 결혼하자’ 등의 말로 속여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17세에 가까운 여성으로 특별히 사리분별력이 뒤떨어졌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선고를 했다. 

2017년도에는 15세 여중생이 27세나 많은 연예기획사 대표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건에서 대법원의 최종판결은 ‘무죄’가 나온 사건을 기억한다. 당시 대법원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등에 근거해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가해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 

위와 같은 일련의 대법원 및 하급심 법원의 판결에, 검찰까지도 위계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이 문제된 사안에서 ‘성교행위’에 대한 직접적 위계가 아니라면 이를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실제 가해자들은 아동청소년과 매우 근접해 있는 경우가 많고 학교·가정폭력, 위기가정 등의 이유로 취약한 대상을 찾아 가정 밖에서 애착대상을 찾고 의지하고자 하는 피해자들을 쉽게 유인해 ‘애정, 사랑’을 이유로 성적으로 유린했다. 신뢰와 친밀감을 가장해 ‘길듯이기(그루밍) 과정’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도 들통이 나면 ‘사랑해서 그랬다’, ‘피해자가 먼저 유혹했다’, ‘그럴만한 여자’라는 식의 2차 가해를 하며 발뺌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2016년도에 내가 담당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여고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관계자의 간음범행이 발생했다. 취약계층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 친밀함을 이용해 간음을 한 사건이었다. 다만 피해자의 진술에서도 폭행·협박·위력이 드러나지 않았고, ‘위계에 의한 간음’은 대법원의 확립된 견해에 의한다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대부분의 검사라면 무혐의로 종결할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을 맡은 담당검사가 면밀한 수사와 법리검토 끝에 ‘위력, 위계 등에 의한 간음’ 대신에 보호자가 아동을 성학대한 것으로 공소를 제기했다. 결국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죄’로 1심에서 징역형의 유죄가 선고됐고 고등·대법원을 거쳐 그대로 원심이 유지됐다.

2018년 미투(Me too) 운동을 거쳐 2019년도에 이르러서는 대법원에서 성폭력 및 성희롱 사건과 관련한 ‘성인지 감수성’ 및 피해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판시했다. 이후 지금까지 많은 성폭력 사건들에서 과거보다는 국민의 법 감정과 정의에 부합하는 결론이 도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은 계속해 두드려야 언젠가는 열린다. 아무리 철옹성 같은 대법원 판결이라도 지속적으로 엄중히 수사해 공소를 제기하고 하급심 법원에서 이를 처벌하는 유죄 판결이 누적됐다면 2020년보다 더 빨리 판례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의 피해아동의 연령을 상향조정하자는 입법론적인 접근과 함께 ‘아동청소년 보호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판례를 만들어 나가려는 장기적인 ‘모두의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백혜랑 법률사무소 서화담 대표변호사
백혜랑 법률사무소 서화담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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