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9일 ‘감염병 시기의 인권’ 온라인 토론회
감염병 대유행 속 더 중요해진 돌봄
안정적 ‘공공필수노동’으로 만들어야
코로나19 대유행 속 ‘돌봄 공백’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어린이집·유치원·학교가 문을 닫고, 복지관·요양시설·요양병원 등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돌봄은 가족의 몫, 정확히는 가족 내 여성의 책임이 되고 있다. 여성 돌봄 노동자의 생계도 위험에 처했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온라인 개최한 ‘감염병 시기의 인권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양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지난 20년간 만들어둔 사회적 돌봄 제도, 돌봄 서비스·공간이 ‘위험’시되고, 모든 돌봄 책임을 가족에게 몰아가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위험하다”고 했다.
1~2인 가구가 늘면서 오늘날 가족 내 돌봄 수행 능력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1990~2005년까지는 4인 가구가 우리 사회의 주류였지만, 2010년 들어 가장 주된 가구 형태는 1인 가구로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603만 9000명(29.8%)에 달한다. 가족이 돌봄 책임을 오롯이 떠맡을 수 없는 사회에 이미 진입한 셈이다.
여성 가구주가 전체의 31.2%(2019)를 차지하는 시대지만,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맡아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 돌봄을 여성이 전담하는 성차별적 사회 구조도 여전하다. 이런 현실에서 코로나19 확산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돌봄 서비스 제공 시설은 문을 닫고, 돌봄은 가족 내 여성의 책임이 되며 여성 돌봄 노동자의 생계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임금노동과 가사·돌봄 노동을 모두 해내야 하는 워킹맘과 한부모, 육아와 홈스쿨링 책임까지 안게 된 엄마들, 하루아침에 생계 위기에 처한 여성 돌봄 노동자들은 각자 한계에 내몰렸다. 양 교수는 “어느 한 사회 구성원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방식은 그만둬야 한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장 중심의 돌봄 체제를 운영해온 기존 방식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 교수는 “현재 노인·아동·장애인 복지, 어린이집, 장기요양 등 주요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지자체가 공급하는 비율이 20%를 넘는 분야는 없고, 10%가 넘는 곳도 드물다. 민간 사업자들끼리 돌봄 서비스 공급 경쟁을 벌이다 보니 저임금·불안정 고용이 지속됐고, 운영의 안정성과 질도 저하돼 돌봄 서비스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정부는 시장 경쟁을 통한 서비스 품질 강화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더욱 중요해진 돌봄 노동을 상품이 아닌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불안정한 지위부터 바꿔야 한다. 공공 재가센터, 상용 재가노동자를 일정 비율 이상 늘리고, ‘공공 필수 노동’화해야 한다. ‘여성 일자리’나 ‘부업’이 아니라 누구나 전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는 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차선으로 선택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