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여성마라톤에 부쳐

캐서린 스위처는 196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성 최초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캐서린 스위처 공식 웹사이트 / AP Images
캐서린 스위처는 196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성 최초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캐서린 스위처 공식 웹사이트 / AP Images

 

 

여성의 역사가 모두 그렇지만, 마라톤 역시 여성들에겐 투쟁의 산물이었다.

마라톤은 전쟁의 승전보를 알리는 데서 시작됐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약 40km를 달린 한 병사의 달리기가 그 시작이었다.

전장에서 시작된 만큼 마라톤은 오랫동안 ‘남성들의 경기’였다. 1896년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이 부활되었지만 여성 마라토너들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숨어서 달리고, 장외에서 비공식적으로 달리고, 반대를 무릅쓰고 저항을 하면서 여자 마라토너들은 계속 도전했다.

20세기로 넘어와 1966년 제70회 보스턴마라톤에서 23세의 로베르타 깁이라는 여성은 번호표 없이 출전했다.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또 출전하려 했으나 조직위원회 단속으로 좌절됐다. 같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도전한 또 다른 여성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퍼는 남자 같은 이름으로 몰래 출전했다가 적발되고, 간신히 완주했다. 1971년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 참가가 허용돼 5명이 참가했다. 19981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1984년 LA 올림픽에서 여자 마라톤은 시작됐다.

한국의 여자 마라톤 선수는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다. 마라톤은 여성 스포츠에서도 침체된 분야다. 오히려 20- 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달리기 열풍이 불고 있다.

42.195km라는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강한 체력과 함께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력의 싸움이기도 하다. 자기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그 영역에 '열등해 보였던' 여성들의 참여를 막았던 건 가부장제의 보호본능에 가까웠다. 힘껏 달릴 자유! 이 당연한 권리를 위해 치열한 투쟁사를 써야 했다. ‘여성마라톤’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벽을 뚫고 달려나간 기록이다. 수동적이고 열등한 ‘여자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성차별적인 주문 대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선택한 이들의 짜릿한 성공기다.

여성신문이 주최하는 ‘여성마라톤대회’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그동안 연인원 26만명, 거리로 치면 지구 46바퀴를 돌았다. 승부보다는 함께 여유 있게 즐기는 행사로 여성 행사 중에는 가장 대규모 행사였던 여성신문의 여성마라톤 대회는 왜 여성과 마라톤을 연결하느냐는 항의도 받았다. 그 낯섦에 도전해온 여성마라톤 20년이 올해 코로나를 만나서 ‘랜선’ 마라톤이 되었다. 모일 수 없으니 각자 하고, 마스크가 불편하면 집안에서라도 운동하며 건강을 지키자는 취지로 여성마라톤은 계속됐다. 의외로 5000명의 목표 인원이 조기 마감됐다. 랜선 마라톤은 우리에게 달리기의 뉴노멀로 다가왔다. 모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해도, 랜선에서라도 우리는 걷고 달리며 코로나 시대의 건강을 지켜나간다.

여전히 상암동 월드컵 공원을 가득 메운 참가행렬이 뜨겁게 그립다. 올해는 그 그리움을 한국여성재단의 기부릴레이에 참여하는 것으로 서로의 연결을 확인하고 있다.

너무 당연한 듯 보이는 '여성의 걷기'도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는 금지 사항이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 여자들의 모든 일상은 고귀하다. 여성마라톤 대회를 가능하게 해준 ‘목숨 걸고 달렸던 여성들’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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