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대면’ 권고에
귀성 전쟁 주춤
명절 갈등 ‘차례상’대신
가족 모두 행복한 시간으로

'비대면 추석'<br>​​​​​​​9일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격상되며 전국적으로 온라인 비대면 '추석맞이 온라인 장터'가 진행되고 있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뉴시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방역 단계가 강화된 상황에서 올 추석은 귀성, 귀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선물도 온라인으 로 구매해서 보내는 풍경이 일상화됐다. Ⓒ삼성

 

코로나19는 명절 풍경도 바꾸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추석에 가급적 집에 머무르라며 ‘랜선 추석’을 권고했고 추석 연휴 열차 승차권도 창측 좌석만 팔아 지난해 절반으로 줄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도 이번 추석에는 없다. “이번 추석에는 이동하지 말라”는 정부의 사인이다. 아예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성 친족 중심의 명절 문화를 뒤집자는 ‘명절 보이콧’ 선언도 늘고 있다. 

지난해 며느리를 맞은 이미아(61)씨는 “작년에는 제사를 합쳤고 올해는 차례를 없애기로 했다”며 “돌아가신 분 모시다가 살아있는 가족끼리 분란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차례상 차리는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온가족이 더욱 행복하게 보내는데 쓰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고 했다.

‘랜선’으로 명절을 보내자는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면서,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불평등한 명절 문화를 바꾸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차례’를 없애자는 게 대표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일단 추석에 차례를 한번 안지내보면 차례가 없어져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든 남성들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이 8000번 넘게 공유됐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이혼신청 접수가 평소보다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법원행정처와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 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3월과 10~11월에는 이혼건수가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 많았다. 명절 갈등의 원인 중 첫 손에 꼽히는 것이 차례상 준비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명절 성차별 사례를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과 남성 모두 ‘명절에 여성만 하게 되는 상차림 등 가사분담’(53.3%)을 성차별 1위로 꼽았다. 

추석 차례상 ⓒ뉴시스·여성신문
추석 차례상 ⓒ뉴시스·여성신문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하거나 부모가 역귀성하는 가족도 늘고 있다. 균열이 생겼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친정보다 시가 우선이라는 위계구조와 아버지-어머니-자녀(며느리) ‘정상가족’, ‘친족가족’ 중심 문화는 견고하다. 명절 노동은 며느리와 시어머니, 딸들에게 편향돼 있다. 30대 워킹맘 D씨는 “결혼하고 나서 친정은 뒷전이 되고 남편 집안의 조상을 모시느라 연휴라도 쉬지 못한다”며 “시가에서 돌아오면 결국 남편과 말다툼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다.

40대 여성 E씨는 “‘죽은 사람 차례 지내려다 산 사람 잡는다’는 말이 왜 나오느냐”면서 “평소 에 부모님과 왕래하며 소통하고 명절 차례는 없애면 진짜 ‘홀리데이(holiday·명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50대 여성 F씨는 “몇년 전 남편에게 차례(茶禮)를 정말 차를 올리는 차례로 지내자고 제안해 바꿨다”고 했다. 그는 “추석과 설 차례는 차례상만 차리다가 2년 전 ‘이것도 허례허식’이라는 생각해 아예 없앴고 지금은 제사를 차례처럼 간소화해 지내고 있다”고 했다.

차례는 ‘차를 올려 예를 차린다’는 의미의 차례지만 흔히 차례상하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차림을 떠올린다. 이는 60년대 국가가 가정의례준칙을 통해 만든 임의적 규칙으로 실제 유교적 차림이 아니다. 유학 경전인 주자가례 등에는 제사상도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 정성스럽게 고가가 아닌 음식을 올리라고만 나온다.

김도일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수(유교문화연구소 소장)은 한가위의 핵심은 부모를 만나고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제사, 차례와 같은 것 또한 1인 가구와 대안 가족이 늘어나며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한해 풍성한 결실을 맺는 때를 맞아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한 공동체가 서로 감사를 전하고 즐기는 페스티벌”이라며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 그동안의 감사를 전하는 게 추석이니 만큼 귀향, 모임, 차례와 같은 형식에 집착할 게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든 마음껏 감사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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