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으로 지은 ‘디지털 교도소’… 억울한 ‘옥살이’ 낳았다
사법 불신으로 지은 ‘디지털 교도소’… 억울한 ‘옥살이’ 낳았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9.08 18:05
  • 수정 2020-09-09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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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공개된 의대 교수 결백 드러나
"억울하다" 호소하던 고려대생 사망

공분 일으킨 사건에도 사라진 신고자
단지 범죄자 낙인찍고 구경만? 논란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요청한 이들에 대해 성범죄나나 강력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알리던 민간 사이트 디지털 교도소에 성범죄자로 신상이 올라온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사망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요청한 이들에 대해 성범죄나나 강력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알리던 민간 사이트 디지털 교도소에 성범죄자로 신상이 올라온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사망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

 

일주일 사이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1명의 대학생이 사망하고 또 한 명의 교수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냈다. 디지털 교도소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생겨난 ‘디지털 교도소’는 N번방 용의자들을 포함해 그동안 공분을 일으킨 범죄 혐의자들을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증 후 공개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특정인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이른바 ‘여론재판’ 하는 일은 전부터 있었지만 구체적인 시스템을 갖춘 형태는 디지털 교도소가 처음이다.

8일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직접 경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해 디지털 포렌식을 받음으로써 결백을 밝힌 사실이 알려졌다. 디지털 교도소는 6월 N번방 영상 및 아동 성착취물을 구입하고자 했다며 채 교수의 신상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경찰은 2주간의 포렌식과 분석 작업을 거쳐 지난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공문으로 "영상을 구매하고자 한 사람은 채 교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3일에는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정모(20)씨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지만 정씨의 학과 동기는 정씨가 디지털 교도소에 무고하게 박제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7월 정씨가 여성 지인들을 대상으로 '지인능욕' 합성을 시도했다며 신상정보와 목소리 등을 모두 공개했다. 

디지털 교도소 측에 채 교수의 결백과 정씨의 사망 사건에 대해 문의했으나 8일 오후 4시 현재까지 답변은 없는 상태다.

 

신상공개를 통한 여론재판에는 사법기관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여성신문
신상공개를 통한 여론재판에는 사법기관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여성신문

 

 

정씨의 죽음 직후 전해진 채 교수의 결백에 디지털 교도소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계속 커지고 있다.

사법기관의 수사를 적법하게 거치지 않고 신상공개를 통한 여론재판으로 사적 보복이 정말 공익을 위한 것이냐는 질문이다. 채 교수가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 된 후 채 교수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정작 채 교수는 어떠한 고소장도 받은 바 없으며 피고소인으로 조사 받은 일도 없다. 아무도 아동 성착취물 구매 행위를 신고하지 않은 것이다.

무고한 피해자가 스스로 무죄를 밝혀내야 하는 점도 문제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무고 당했음을 밝혀도 의심은 계속 이어진다. 채 교수는 직접 휴대전화를 경찰에 제출해 포렌식 하고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휴대전화가 2개 아니냐’며 의심하는 상황이다.

현재 디지털 교도소는 실제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람의 신상정보도 공개하고 있다. 손정우의 해외 송환을 불허한 판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람의 수는 현재 100여명에 달하며 이 중 77명이 성범죄자다.

디지털 교도소 측은 특정인에 대한 신상공개가 사실상 불법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 소재 도메인과 서버를 이용하며 수사 기관을 예의 주시한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더라도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은 타인의 인적사항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것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 원칙에도 반한다.

디지털 교도소를 옹호하는 측의 주장은 강경하다. 사법기관을 통한 법적 처벌이 국민 법감정에 한참 미치지 못 하는 현실에서 온라인 여론재판을 통해서라도 단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명백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이지만 법적 처벌을 받기는 어려운 행위(지인능욕 합성 시도·미성년자 유인행위 등)는 추후 범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익적 차원’이라는 면에서 앞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배드파더스’의 사례도 함께 비교된다. ‘배드파더스’는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로 앞서 여기에 공개된 1인이 활동가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양육비 문제는 단순한 금전채무 불이행과 달리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배드파더스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하며 범죄가 아니지만 특정한 방향에서 논란을 일으킨 인물들에 대해서도 신상공개를 이어가며 악성댓글을 격려하기도 해 ‘배드파더스’와 비슷한 법적 결론이 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평이다. 특히 고려대생 사망사건과 채 교수의 무고사건을 통해 실제 피해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교도소의 등장에는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지만 동시에 관음적인 대중의 시선도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 특성상 명확하지 않은 정보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발생해도 이를 수습하기 전 순식간에 많은 사람에게 사실이 퍼져버리는 것이 문제“라며 ”‘공익적 차원·정의 구현을 표방하지만 공신력 없는 특정인 몇 명에 의해 낙인이 찍히고 공개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채 교수 사건 당시 그를 경찰에 고발하거나 한 사례가 없는 것은 디지털 교도소 내부에서도, 내용을 접하는 사람들도 모두 명확한 확신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특히 당시 사건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휩쓸려서 분노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이 크지는 않고 관망적 차원의 동조만 했던 걸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디지털 교도소 박제, 결백은 스스로 풀어라? 의대 교수 결백 밝혀 http://www.womennews.co.kr/news/202161
'지인능욕' 요청했다는 고려대생 사망... 디지털 교도소 신상공개 논란 http://www.womennews.co.kr/news/20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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