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성범죄자 등 흉악범의 얼굴과 신상 등이 공개된 '디지털교도소'가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디지털교도소 캡쳐
성범죄자, 살인자 등 강력범죄의 얼굴과 신상 정보를 공개한 '디지털 교도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디지털 교도소 웹사이트 캡쳐

 

‘디지털 교도소’라는 웹사이트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 일각에서 이와 같은 유의 사적 제재행위가 나타나게 된 동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에 호응하게 된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의 깊은 성찰과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적어도 법률가의 시선에서 볼 때 그 방식이 심히 우려스럽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먼저, 판결이 있기 전의 경우.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우리 모두는 헌법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서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유감스러운 일이건만, 사실 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거니와 당사자에게 방어기회를 부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심지어 검사의 불기소처분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들이 그 당사자에 대해 사적 제재를 꾀하려는 모습마저, 어디에선가 필자는 본 기억이 있다. 법보다는 ‘지금 이곳에서의 우리들의 정의감’이 우선한다는 걸까? 그러나 묻노니, 그게 과연 정의일까?

다음으로, 판결이 있은 후의 경우. 형법은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경우 이외에 참인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까지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보고 처벌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유죄로 확정된 성폭력범죄 피고인의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제도를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공개정보의 악용금지에 관한 규정도 두고 있다. 공개된 정보를 확인했더라도 그 공개된 정보를 활용해 신문·잡지 등 출판물, 방송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공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설령 범죄를 저지른 공개대상자라고 해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이 아닌 곳에 고용되는 것, 주택이나 사회복지시설 이용, 교육이나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완전히 ‘갈아 마셔버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함부로 공개행위를 했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차별행위를 했다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게다가 특정한 사람의 범죄경력자료나 수사경력자료는 법에서 몇 가지로 열거하고 있는 경우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취득을 해서는 안 되며, 그 조회가 허용되어 있는 경우에도 엄격하게 정해진 용도 이외에는 그 자료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무슨 범죄를 저질렀던 것인지, 그 범죄의 경중은 어떠한지를 논하지도 않는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역설적으로 이 규정들은 ‘범죄자’라는 낙인이 그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다른 무엇보다도 여실히 보여준다.

응분의 처벌을 받고 난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어 사회적으로 계속 격리시켜 버리려는 시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안에 따라서는 그 자가 ‘응분’의 처벌이라 할 수 없는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을 뿐인 탓에 달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비통한 외침에 우리가 경청하고 존중해야 할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는 것도 안다.

‘범죄자에게 무슨 놈의 인권이냐?’라는 반발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러한 반응이야말로 오히려 더 자연적인 것, 생래적인 것일 수 있다. 그 말 속에는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조차 충분한 보호와 적정한 배려를 다 해오지 못했었던 것 아니냐는 정당한 비판의 취지도 함께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일 수 있음도 잘 안다.

하지만 그 범죄행각이 극악하고 저열한 것이었다고 해서 우리가 법과 원칙을 몰각하고서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대응해도 좋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법과 원칙에 따른 판단이 때때로 우리를 충분히 흡족케 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법과 원칙의 테두리를 존중하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가 품위를 잃지 않고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올바른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미셸 오바마의 말처럼 ‘그들이 저급하게 나올 때 우리는 기품있게 나아가는 것(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것이 악에 대적하는 우리의 진정한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방법임을 의심치 않는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