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선각자 허난설헌과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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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7년.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린 작품 횟수만 무려 121회다. 1966년 34세의 나이로 여인극장을 만들 당시만 해도 37년이란 시간이 이처럼 빨리 갈지 몰랐다고 강유정(73)씨는 말한다. 그의 이름 앞에 붙여지는 한국의 여류 연출가 1호라는 수식. 허난설헌의 삶과 고뇌를 표현한 그의 최근작 '반가워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가 대학로 문예진흥원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4일까지 공연한다. 시작(詩作)에 대한 열정으로 온 몸을 불살랐던 허난설헌과 닮은 모습인 강씨를 지난 달 29일 무대 뒤에서 만나보았다.

“조선시대에 여성이 시작 활동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웠죠. 가정하고 양립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난설헌의 작품은 상당히 훌륭했어요. 시대의 선각자였던 셈이죠.”

연극 '반가워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는 시작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채 '방탕한 시를 짓는 부덕한 여성'이라 낙인찍혔던 허난설헌의 고뇌를 다룬다. 조선이라는 시대 상황이 여성에게 요구한 미덕,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의 출세를 도와야 한다는 여성의 역할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갈등했던 허난설헌의 괴로움이 사극의 형식을 빌어 사실주의적으로 재현되었다.

1966년, 여인극장을 만들다

허씨 5문장(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이라 불릴 만큼 문장에 뛰어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하며 그의 예술적 재능을 사장시켜야 했던 허난설헌. 27세의 나이에 그의 시 '몽유기(夢遊記)'에서처럼 아무런 병도 없이 유연히 눈을 감는다. 생전에 그는 '빈녀음(貧女吟)'을 통해 여성의 인권회복을 주장하고 '혹우(惑愚)'를 통해 세도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등 고통받는 계층과 시국을 고민한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강씨는 37년이란 연극 인생 말미에 허난설헌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고 말한다. 그 역시 세 아이의 엄마였고 주변의 반대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30대의 열정 하나로 연극계에 뛰어들었기 때문.

1950년 동국대 연극반에서 연극을 시작한 강씨는 이해랑 선생이 대표로 있던 극단 신협에 들어가 연극 수업을 받았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란 생각에 배우 활동을 하며 무대를 익혔고 강단있는 성격을 인정받아 연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결혼을 하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연극 활동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동료 연극인 10명과 극단 여인극장을 만든다. 극단의 이름 탓인지 연극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졌다.

“결국은 여성문제에 귀착되는 얘기죠. 여성들이 연극활동을 통해 사회참여를 해보자 그런 차원에서 출발한 건데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연극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여자 연출가도 없었고.”

창단 첫 공연 '갈매기'를 시작으로 휘 네오나드의 '다(아빠)', 서머 셋 모옴의 '아내라는 직업을 가진 여인', 휴 네어드 '키 큰 세 여자', 테렌스 맥널리의 '마스터 클래스', 마틴 맥도나의 '아름다운 여인의 작별'에 이르기까지 여성, 인간의 성찰을 다룬 수많은 해외 작품과 국내 창작품을 선보였다. 1972년에는 여인극장 전용 소극장인 <에단바라 소극장>을 만들고 1975년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젊은 여성연극인의 사회 참여에 있어 여성 연극인으로서의 역할'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 강성희작 '역광'을 공연하는 등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왕성한 대외 활동을 벌였다.

“여자들이 연극한다고 떠들기만 하고 싹 꽁지 감추고 한 두 번하고 그만 두면 어떻게 해요. 내 일에 책임을 지려다 보니 37년이란 세월이 흘렀죠.”

강씨에게 37년은 그저 자기 일에 책임을 졌던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갈수록 여성을 다루는 연극을 하게 되는 것은 그의 긴 연극 인생과 연장선상에 놓인다.

“연극은 하나의 시대정신인데, 연극정신이 옛날만 못하고 상당히 퇴화되어 있어요. 작품도 전부 개그식으로 흘러가고. 진지한 문학성이 담긴 연극이 드물어 안타깝죠.” 한국 연극계에 대한 우려를 덧붙인다.

삶의 일부가 된 연극

그를 아는 후배들은 강씨의 곧은 성격과 고집이 극단을 이끌어 온 동력이라 입을 모은다. 연극협회 심재찬(50)회장은 좋은 작품, 레퍼토리로 한국 연극계의 초석을 닦은 이로 그를 평가한다. “요즘이야 여성이 활동하기에 여건이 좋지만 당시만 해도 극단을 운영하기란, 그것도 여자가 하기란 힘든 일이었어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극계를 지켜온 분이시죠. 적극적이고 부지런한 분이세요.”

89년부터 여인극장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영화배우 정경순(38)씨는 “강단 있고 무서운 분이다. 너무 곧고 고집이 세서 그 고집으로 여인극장을 이끌어 오신 것 같다”면서 “문학적이면서도 풍류 좋아하고 배우들이랑 어울려 술 마시는 것 좋아하는 호탕한 분이다”고 전한다.

강씨는 문학성이 담긴 진지한 작품을 선호한다. 건강이 안 좋아져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지만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연극이 이미 '삶의 일부'라고 말하는 그에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연극이 막을 내릴 즈음 중년 여성 관객들은 허난설헌이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재미와 쇼가 압도하는 요즘의 공연물과 거리가 먼 진지함을 추구하지만 대부분 여인극장의 작품과 강유정을 기억하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02-765-7890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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