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W정치 인사이드]
정부의 의료개혁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자
이유있는 비판 수용하는 자세 보여줘야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민의 일상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상점가에는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자녀 돌봄 문제로 곤혹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의 하소연은 이제 하나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대한민국이다.

전 국민이 내일을 두려워하며 코로나 재난을 버티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 서있는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의사들의 요구사항은 보건복지부가 의료 서비스 확충을 위해 내어 놓은 4대 정책의 전면 철회다.

그 중에서도 핵심 쟁점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이다. 정부는 현재 OECD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임상의 평균 숫자가 3.5명에 비해, 한국은 2.4명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의대 정원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제안한 정책을 통해서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문제 인식에 한국의 현실적인 상황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여성신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해 파업을 하고 있는 전공의·전임의를 지지하는 충북대학교병원 의과대학 교수회와 임상교수협의회 교수진들은 1일 오후 충북대학교병원 본관 입구 앞에서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여성신문

 

2018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6.9회이다. 이는 OECD 평균인 6.8회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로 한국의 보편적 의료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과 평균 의사 수가 동일한 멕시코의 경우는 연간 2.8회다. 무려 6배가 차이난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수준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영아사망률', '기대 수명', '주요 질환별 사망률'만 봐도 한국은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나라 중 하나다. 단순히 의사 숫자만으로는 의료 서비스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지방에 주요 질환을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것 또한 일시적인 의사 숫자 증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지방 인구 감소가 격화되는 현실 속에서 수술 같은 긴급 의료 시스템을 항시 운영한다면 필연적으로 병원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증원된 의사 역시 수도권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관련 부처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의료 수가 개선을 통해 해당 부분의 적자를 보전해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사들이 이미 돈을 많이 버는데 무슨 수가 개선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 의료 수가가 아닌 리스크를 크게 짊어져야 하는 처치 과정에 대한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은 이미 수치로도 나와 있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검사와 영상진단의 경우는 원가를 훨씬 상회하는 보전을 받고 있지만, 처치와 수술은 원가 보전이 78%에도 미치지 못한다.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과잉진료를 막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나 이로 인한 다양한 현장의 부작용을 회수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은 없고, 결국 피해는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이 짊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방 의료 시스템의 개선을 바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의사양성 비용 추계 및 공공지원 방안 연구’에 의하면 의대생 한 명이 전문의가 될 때까지 들어가는 총 비용은 8억 6700만원이다. 이 비용의 대부분은 의사 개인과 해당 병원이 책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졸업 후 2년 동안의 초기 연수 비용 전체를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의대를 추진하는 의도가 국민 건강권의 확보에 있다면 기존 의사 양성 비용의 일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도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광주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28일 북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냉방기를 이용,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광주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28일 북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냉방기를 이용,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의사 파업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강한 것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생명을 저당 잡힌 시민들은 분노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정책을 만드는 이들만큼은 사회가 일부 사람들의 선한 의지와 희생정신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 지금의 문제를 의사와 시민들 간의 분쟁으로 이끌며 의사들을 압박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무익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진들을 군인에 빗대며 탈영이라고 한 것은 그런 이유로 적절치 못하다. 위중한 상황에 의료진들의 반발이 클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정책을 추진 한 것부터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엄정한 공권력을 주문하는 것이 마치 ‘법의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도 마땅히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 정부는 모든 논의를 원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의사의 파업에 무릎 꿇는 게 아니라, 이유 있는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일 뿐이다. 정부가 원점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보인다면 의협도 더 이상 시민들에게 기득권 집단으로 비판받지 않도록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겠다. 서로 다른 입장이더라도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 풀어나가며 합의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 시민의 일상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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