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첫 개인전 '얼굴-풍경(Facescape)'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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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를 꿈꾸었던 근대 속 여성들

화폭에 담아 탈근대적이었던 삶 조명

여성에게 근대는 투쟁의 공간이다. 동양, 육체, 자연. 근대의 이분법이 여성과 함께 놓은 범주들은 열등함의 문화적 상징이다. 이성, 논리를 앞세운 서구 남성 주체를 위해 타자가 되어야 했던 존재들이다.

한국의 근대 여성 8인을 그린 동양화 전공의 여성에게 근대란 화두는 무엇일까. “일련의 초상화를 통해 그녀들은 사실 위대했었다 류의 잊혀진 역사를 조명하거나 여성들의 예술에는 다른 종류의 위대함이 있다는 차이를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태도 역시 근대라는 시간 밖으로 끊임없이 탈주하려 했던 그들의 생애를 남성/여성, 정신/몸, 시간/공간이라는 근대의 이분법과 흑백논리의 틀에 가두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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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분야에서 근대를 지나온 8명의 여성 예술가를 조명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달 3일부터 9일까지 갤러리 창에서 열리는 '얼굴-풍경(Facescape)'전. 작가 이정민(33)씨는 영화 속에서 다른 감독의 영화나 스타일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해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하는 방식인 '오마주(homage·경의)'를 그의 작업 태도로 삼았다.

탈근대적 삶을 산 여성들에 대한 경의

인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을 사용해 그리거나 그가 썼던 화법을 모사해 그려넣는 방식. 이씨가 생각한 오마주는 크게 두 가지다. 양식적 오마주와 삶에 대한 오마주. 화가 박래현의 초상화 배경에는 그녀 작품의 일부분을 모사했고, 천경자의 초상화는 천경자 풍으로 그렸다. 박경리의 초상은 갈필의 수묵화로, 전통예술의 외길을 걸었던 명창 김소희는 전통 초상 화법을 따르는 방식을 취했다.

월북 이후 사망 연도조차 알 수 없는 무용가 최승희는 배채법을 사용,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삶의 질곡을 표현했다.

박경리의 초상화에 쓰인 수묵도 실제 문인화 기법에서는 마이너 장르로 통한다. 기법을 통한 이씨의 설정이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2000년부터 작업을 해 온 이씨는 “매번 새로운 인물을 접할 때마다 새로운 기법에 접근하기 위해 쩔쩔 매기도 했지만 덕분에 짧은 화력에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혜석, 윤심덕, 최승희, 전혜린 등 그가 재현한 8명의 여성은 현재까지도 그 자료가 미흡하거나 평가가 양분되는 이들. 이씨는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무명의 시간 속에서 주체로서의 삶을 이끌어온 그들의 치열함이 놀라울 따름이라 말한다.

그들의 전기 속에 점철되어 있는 유랑, 도피, 객사, 자살, 이혼, 투신, 숙청 등 극단적인 단어들이 이를 설명해 준다는 것. 함께 투신했지만 전집이 나와있는 김우진과 달리 윤심덕은 거의 연구되거나 기록된 바가 없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투신한 윤심덕의 존재는 근대의 기억에서 제외되었다. 박래현의 경우 남편 김우창 화백에 가려 작품의 훌륭함보다 신사임당상을 받은 '양처'로 기억되며, 나혜석, 전혜린은 지나치게 앞서가 버린, 이미 탈근대적인 존재들로 공식적인 역사에서 아웃되었다.

이씨는 “한국화라는 모호한 이름의 전공을 가진 여성인 나로서는 이미 근대에 내장된 탈근대적 계기로 보여지는 그들의 삶이 전혀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씨에게 이번 전시는 바로 끊임없이 근대를 탈주한 그들의 계보를 잇는 작업이다.

“나혜석이 둘째 아들인 진을 낳던 해(1926) 윤심덕은 일본에서 마지막 레코드를 취입한 뒤 관부연락선으로 귀국하던 길에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했다.

나혜석이 이혼과 화재 등 잇단 불행으로 수전증을 앓고 있던 시절(1933), 이화중선의 노래에 감명을 받아 소리의 길로 접어든 김소희는 이미 소녀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동경여자미술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래현은 1942년 천경자를 후배로 맞이하며 그녀가 우연히 운보 김기창과 만나게 되는 1943년, 최승희는 중국과 만주를 떠돌며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씨가 택한 인물들은 그가 한 명의 여성으로 성장하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이들. 전혜린의 에세이에 배어있는 광기 서린 고독에 매혹되어 밑줄을 그어가며 밤을 지새던 중학생 시절과 박래현의 기막힌 작품들이 남편 운보의 그늘에 가려 있음에 분개하고 <토지>라는 대작을 써내는 작가가 여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그의 경험은 그 세대 여성들이 가졌던 감수성, 성장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작가분이 근현대 인물사 전시회를 한 적이 있는데, 수십명 가운데 여성은 딱 한 분이었던 기억이 나요.”

이번 전시는 작가가 말하듯 “남루한 사진 속을 뚫고 나올 듯 그들의 신체에 각인된 '처음' 살이의 풍경, 즉 얼굴에 대한 오마주”이자 근대가 지웠던 여성들을 복원시키는, 역사쓰기 작업이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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