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따라 달라지는 결혼, 그리고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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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세대(월드컵세대)라 불리는 임향미(26)씨는 “결혼은 나와 가족 모두를 위한 이벤트”라며, 가족과 자신의 의견을 절충해 결혼식을 준비했다. 사진은 한 커플의 결혼식 사진. 신랑이 사회자의 짖꿎은 주문에 응해 기꺼이 체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결혼시즌이 시작됐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의 최대 고민은 혼수비용.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 평균 혼수비용은 2000만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혼수비용은 결혼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결정되는 법. 최근 결혼한 커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결혼의 형식을 바꾸어 나간다. 필요에 의해 결혼 절차를 가감하다 보면 혼수비용은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까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신세대의 가치관에 따라 결혼의 내용과 비용, 얼마나 어떻게 달라지는 지 알아본다.

재활용 커플 '우리끼리 좋으면 됐지'

지난 7일 서울 녹사평 지하철역 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조혜원(28)씨와 이수현(36)씨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결혼을 준비해 경제적 이익을 본 경우다. 주변사람들은 이들을 한결같이 '재활용 커플'이라 부른다. 우선 결혼 전 청첩장을 150장만 찍어 친지나 어른들께 드리고 친구나 가까운 직장동료에겐 이메일로 발송했다. 또한 장소 대여비가 들지 않고 혼잡하지도 않은 지하철역사 광장 골라 결혼식장으로 정했다.

혜원씨는 예복도 일회적이고 화려한 예복 대신 다홍빛 고운 드레스형 한복을 맞춰 입었다. 남녀동시입장에, 양가부모의 화촉점화도 생략되고 나이 지긋한 여성이 주례를 맡는 등 혜원씨는 형식과 절차가 파괴된 초특급 알뜰 결혼식을 준비했다. 결혼 서약 후 나눠 낀 반지 역시 수현씨 어머니에게서 받은 금가락지를 녹여 만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반지였다.

청첩장 6만원, 결혼식장 연출, 촬영, 폐백 준비에 모두 125만원, 한복을 맞춰 입는 데 110만원, 예단으로 현금 50만원, 혜원씨는 결혼식 행사 준비에만 300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살림살이 장만은 남편 수현씨가 자취하면서 웬만한 생필품은 갖춰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혜원씨는 세탁기와 옷장, 가스렌지, 책장, TV, 장식장 등 나머지 살림살이만 보충하면 해결돼 총 166만원만 투자했다. 혜원씨는 “기존의 결혼식을 그대로 따라가니까 허례허식이 생기는 거지, 제가 원하는 대로 준비하니까 자연히 경제적 이익이 따르던 걸요”라고 말한다.

W세대 '나와 가족을 위한 이벤트'

월드컵으로 등장한 W세대. 이들은 개인의 열정과 욕구에 충실하면서 절대 공동체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원칙이 있다. 결혼식을 가족과 개인이 모두 만족하는 행사로 만들어나가는 절충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W세대를 대표할 만한 임향미(26)씨는 9월 6일 결혼한 신부. 향미씨는 직장에서 번 돈으로 총 2000만원이 넘는 혼수비용을 충당했다.

향미씨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결혼식과 신혼여행이다. 결혼식은 당사자 둘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행사이기 때문에 가족들의 의견도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향미씨는 어머니의 의견대로 웨딩드레스며 신부화장, 행사촬영을 준비했고 각각 150만원, 140만원, 270만원을 썼다. 또 남편 박대규(32)씨 누나는 직접 결혼식 꽃 장식과 부케를 만들어 줬다. 뿐만 아니라 침대나 소파, 세탁기, 예물 등 몇 가지 혼수는 가족이 장만했다.

향미씨는 “결혼의 준비과정이 가족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이벤트였다”고 흡족해 했다.

또 하나 향미씨가 중점에 둔 것은 신혼여행. 정말 서로를 위해서만 시간을 써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식 날짜를 일부러 추석연휴와 맞춰 7박 9일로 잡았고 장소로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으로 정했다. 항공권과 호텔만 여행사에서 지정해주는 형태로 각각 213만원, 총 426만원의 자유여행을 준비했다.

여행사 한 관계자는 “최근 신혼여행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W세대는 리조트를 중심으로 한 단체여행에서 탈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긴다”고 전했다.

순종형 신부 '도움 받는 것도 지혜'

오는 11월에 결혼하는 김영주(30)씨와 김갑수(33)씨는 요즘 결혼준비에 한창이다. 신랑과 신부가 서울과 지방에 각각 떨어져 있어 혼수장만은 전적으로 영주씨 부모님이 맡아 하고 있다.

얼마 전 상견례를 끝낸 영주씨 어머니는 양가 집안전통에 맞춰 결혼식장을 호텔로 잡고 예단과 혼수품을 백화점에서 최고급으로 알아보는 중이다.

호텔 예식비용으로 350만원, 양문형 고급 냉장고 150만원, 드럼세탁기 100만원, 홈시어터 110만원으로 벌써 700만원 정도 혼수비용을 쓴 상태. 첫째 딸 시집인 만큼 어머니는 나머지 예단과 신혼여행, 혼수비용으로 1500만원은 더 장만해 줄 계획이다.

영주씨는 “사실 무리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집 장만한 친구들이 더 빨리 자리잡는 걸 보면요”라며 부모님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영주씨는 어머니가 혼수비용을 마련해 준 대신 자기가 모아둔 1800만원은 조만간 집 장만할 때 보탤 생각이다. 인천에 싸게 나온 아파트를 알아봐 뒀다고 귀띔한다.

영주씨처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혼수를 장만하고 나머지는 집 장만에 눈을 돌리는 예비부부들도 많다. 부동산 뱅크(www.neonet.co.kr) 양진섭 취재팀장은 “고물가 시대 혼수 1위는 아파트”라며 “서울 변두리나 김포, 파주, 구리, 광명, 판교 등 신도시 아파트 분양에 관심을 가지는 커플들이 많다”고 밝혔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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