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W정치 인사이드]

내 지인 A씨는 올 해 들어 공식적인 수입이라고 부를 것이 없다.
공연 관련 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나 같아도 공연 보러 가자는 소리 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며 마지막 남은 직원의 “퇴직금만 준비되면 폐업할 수 밖에... 남은 길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희망일자리센터 구인정보 게시판의 모습. 2020.06.10. myjs@newsis.com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성동구 희망일자리센터 구인정보 게시판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사실 예술관련 직종은 팬데믹 상황 이전에도 재난 수준에 가까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의 예술활동을 통한 연간 수입은 평균 1,281만원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연간 수입이 100만원 미만인 72.7퍼센트의 예술인들에게는 꿈에서 상상해볼 법한 금액이었다. 지금까지 척박한 상황에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노오오오력’해 왔던 예술가들이 팬데믹 상황 앞에서 하나 둘 백기를 준비하고 있다.

위기에 놓인 것은 예술계 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 동향에서 청년 실업률은 10.7퍼센트다. 이는 1999년 6월의 11.3퍼센트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잠재적 구직자까지를 포함한 확장실업률은 26.8퍼센트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5년 이후 가장 높다.

관주도 사업의 노인 일자리 사업 대상인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전연령대에 걸쳐 실업률 증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 안에서도 청년 실업률 문제는 한국의 미래 지표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문제이기에 그 심각성이 엄중하다. 기본 생계비 조달조차 어려운 청년에게는 결혼이나 출산을 비롯한 미래 계획은 망상처럼 느껴진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 코엑스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국제컨퍼런스에서 리차드 코줄-라이트 UN무역개발회의 세계화와 발전전략국 국장과 대화하고 있다. 2019.12.03. bjko@newsis.com ⓒ뉴시스·여성신문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2019.12. ⓒ뉴시스·여성신문

 

일반 시민들의 삶은 전쟁이지만 사회 일각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지난주 대통령 직속 위원회 두 곳이 지난 1년 간 업무 관련 회의 명목으로 사용한 식대가 5천 만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책기획위원회’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주로 참치, 한우 식당을 사용하며 이와 같은 금액을 지출했다고 한다. 몇 명이서 어떤 회의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 5천만원에는 재난 지원금으로 굶어 죽는 일만 겨우 면한 사람들이 낸 세금도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입만 열면 공정하고 도덕적인 세상에 대한 희망의 근거를 제시했던 N86 정치인들의 일상 역시 많은 시민들에게 절망의 근거로 다가왔다. 그들은 이미 우리와는 너무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자녀들의 유학은 기본이고, 다양한 문화 상징 자본들을 선점해서 독점하고 있었다. 촘촘히 얽힌 그들만의 관계 역시 보통의 시민들이 닿을 수 없는 권력을 만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비난했던 기득권집단과 다름 없거나 혹은 더한 모습에 대해서 반성하고 자성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조국백서’에 참여했던 전우용 씨의 글을 빌면 이렇다. N86들의 실망스러운 행동은 “기득권층 일반의 관행 혹은 상식의 문제”이고, 입시 관련한 품앗이 등등의 반칙들도 “사회적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인 이들을 비난하면 개혁이 어렵다는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준 떨어지는 협박이 아닐 수 없다.

개혁당 성폭력 사건이 문제가 되자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는 유시민 전 이사장의 발언이 생각난다. 선거에 집중해서 이길 생각해야지 지금 성폭력 문제나 이야기 하는 것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를 보면 N86정치인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익 공동체들은 나이 먹어서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집단이 아니었나 싶다. 소위 엘리트인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시민들은 그저 가라는 대로 가면 되는 역할만 해야 하지 그 이상의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정작 그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밥 먹고, 자식 키우고, 따뜻한 노후를 준비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조국백서 표지 ⓒ김민웅 페이스북 캡처
조국백서 표지 ⓒ김민웅 페이스북 캡처

2007년 1월 일본 잡지 ‘논좌’에는 글 한 편이 올라온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뺨을 때리고 싶다. 31세 프리터. 희망은 전쟁'이라는 긴 제목의 글을 쓴 아카기 도모히로는 당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통해 월 10만엔을 벌며 살아가는 31세의 프리터였다. 그의 글은 버블경제의 단물을 한 방울도 맛보지 못했지만, 그 설거지를 온통 담당 해야만 하는 저임금 청년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일본 좌파가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평화체제는 약자와 강자의 시스템이 공고해지기만 하는 제도이고, 포기를 반복해가다 드디어 포기가 내재화되는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그런 그는 자신이 전쟁이라는 공통의 재앙을 갈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쟁은 재앙이다. 그러나 고통은 잃어버릴 것이 있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런 내 입장에서 보면 전쟁은 비참한 것이 아닌 도전의 기회이다.”

언제나 재난은 발목부터 차오른다. 신체적 약자, 경제적 약자, 신분적 약자들이 재난의 1차 희생자가 된다. 그렇지만 사회가 재난을 본질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한다면 목과 머리 끝까지 잠기게 되는 것도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를 통해 이 재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공정함에 대한 신기득권 층의 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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