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딸맘의 느낌표를 찾아서 ⑩

 

꽃은 지더라도 온힘을 다해 활짝 핀다. Ⓒ송은아
꽃은 지더라도 온힘을 다해 활짝 핀다. Ⓒ송은아

 

단조롭다고만 느껴진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우쳐준 일이 있었다. 육아에 긴장을 완화할 수는 없겠으나, 셋째아이가 기저귀를 뗀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도 힘든 일은 어느 정도 보냈다 여겨지던 어느 날 무기력과 통증이 밀려왔다. 내일 아침의 통증이 걱정되어 잠들기조차 두려웠다. 자주 가던 집 근처 병원에서 너무 초기에 가서인지, 그저 대수롭지 않은 근육통 정도로 처방을 해주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며칠 집에 쉬고 있어도 통증이 더욱 심해져 아이 낳기 전의 통증과 고열이 계속되자 원인모를 병에 대한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다시 병원에 찾았더니 이제는 대형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하면서 진단서를 발급해주었다. 대형 병원에서는 몇 시간의 검사 끝에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진단 시기를 놓쳐서 다른 장기까지 무리가 갔다면서 바로 입원하라했다. 눈앞에 아이들이 아른 거렸지만, 입원 수속을 밟았다.

입원하고서는 오롯이 치료에만 집중하라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병실에서 홀로 있었다. 덕분에 결혼하고 10여 년만에 나만의 시간을 길게 가질 수 있었다. 음악도 듣고, 잠깐잠깐 책도 보고 나름 호강이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보고 싶은 아이들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다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 한 장도 내가 없었다. 매번 세 아이들을 찍어주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 미처 함께 사진 찍는 여유는 부려보지 못한 것이다. 원래 사진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첫째 만삭 사진을 찍은 이후로 사진과 더 멀어졌다. 한 살씩 먹어갈수록 싱그러움을 잃어가는 변해가는 모습을 남기는 게 부담스러웠다.

이제와 생각하니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니 내가 사라질 때 흔적이 없겠구나 싶었다. 오래전에 친구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셨는데, 최근에 찍어 놓으신 사진이 없어 친구가 많이 힘들어했던 일이 떠올랐다. 영정사진도 추억을 더듬을 만한 사진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이라는 장소는 마지막 상황을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곳이었다. 

매일 아침 동쪽하늘을 보며 오늘은 또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구나 하며 알찬하루를 바래본다. Ⓒ송은아
매일 아침 동쪽하늘을 보며 오늘은 또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구나 하며 알찬하루를 바래본다. Ⓒ송은아

 

입원 기간 동안 홀로 수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만날 수 없던 아이들을 핸드폰 사진을 통해 시간순서대로 보니 아이들이 커가고 있는 게 눈사진에 보였다. 세월이 빠르게 스치듯 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 사진들을 볼 때, 사진을 찍고 있었던 당시의 엄마 모습이 어떨지 궁금할 것 같았다. 내가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엄마를 궁금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구는 지나가던 자기 또래의 여성 뒷모습을 보고 멈칫하기도 했단다. 자기가 어렸을 때의 마 나이만 기억하고 자기가 이미 그 나이인 것을 순간 착각한 것이다.

또 내일보다는 하루 더 젊은 오늘의 내 모습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에서 내가 없는 것처럼, 인생에서 육아와 살림을 핑계로 한 발 물러나있지 말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멈추고 혼자만 있던 시간은 마흔 언저리에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사진 하나만으로도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반성,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인 오늘을 헛되이 보내버린 시간이 되지 않도록 매일 매일을 의미 있게 지내기 위해 애써야겠다.

송은아 혜윰뜰 작은 도서관 관장·프리랜서 브랜드컨설턴트
송은아 혜윰뜰 작은 도서관 관장·프리랜서 브랜드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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