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류호정 정의당 의원
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
1호 법안 ‘비동의 강간죄’ 발의
67년간 바뀌지 않은 형법 32장
‘성적 침해의 죄’로 전면 개편
폭력·협박 기반 현행 구성요건에
상대방 ‘동의 여부’ 등 추가
“동의 없는 성교는 강간” 법제화

 

Ⓒ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21대 국회 개원 석 달, 류호정(27) 정의당 의원은 가장 주목받은 정치인이다. 출근복으로 선택한 원피스를 둘러 싼 갑론을박이 벌어진 뒤 화제의 중심에 선 류 의원은 행보마다 이슈가 된다. 낡은 정치판에 균열을 내는 류 의원이 이번에는 67년간 바뀌지 않은 ‘강간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대표발의한 1호 법안의 제목은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이른바 ‘비동의 강간죄’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정조에 관한 죄’.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성범죄와 관련된 제32장(형법 297~305조)의 제목이다. 정조란 ‘여자의 곧은 절개’ ‘순결’을 뜻한다. 피해자에게 ‘왜 짧은 치마를 입었나’ ‘왜 늦은 밤에 다녔나’라고 물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정조가 큰 영향을 끼쳤다.

40년 뒤인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제32장의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기는 했다. 당시 일부 법학자와 여성단체가 제안한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의 변경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조 관념이 반영된 강간죄의 판단 기준과 세부 규정도 달라지지 않았다. ‘진짜 피해자’에 대한 통념도 여전하다.

다시 25년이 흐른 2020년, 류 의원은 형법 32장의 명칭을 ‘성적 침해의 죄’로 전면 개편하는 법안을 내놨다. 그 사이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다양한 형태의 성범죄가 출현했고 미투 운동이 번졌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류 의원의 말이다. 그는 이 법안은 “단순히 몇 가지 구성요건과 형량을 고치는 안이 아니”라며 “성범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율하는 형법 제32장을 시대의 변화,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전면 재정비하는 법률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성폭력상담소 66곳에 접수된 강간(유사강간 포함)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직접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피해사례는 71.4%(735명)에 달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지금처럼 ‘폭행·협박’가 아닌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형법 297조 강간죄를 상대방 동의 없이(1항),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2항),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3항)으로 세분화했습니다.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과 협박’으로 간음한 경우에만 강간죄를 인정해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해요. 강간추행죄를 규정한 형법 298조도 ‘상대방 동의없이 추행한 사람’(1항)을 신설했고 기존 조항에는 폭행·협박뿐 아니라 위계·위력도 넣고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류 의원은 법안에서 ‘간음(姦淫)’이라는 표현도 모두 ‘성교(性交)’로 바꿨다. 그는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자 간(姦)은 계집 녀(女) 자를 세 번 쌓은 글자로 ‘간악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여성혐오적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홍수형 기자

관건은 공론화와 설득…
“함께 하기에 해낼 수 있어”

비동의강간죄 개정은 세계적인 추세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한국 정부에 “성폭력범죄의 정의를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없음’을 중심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영국, 독일, 아일랜드, 호주, 미국(11개 주) 등의 여러 선진국은 이미 국제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비동의강죄 입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국회에선 여야 5개 정당 모두 ‘비동의 강간죄’를 신설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무관심 속에 임기만료 폐기됐다. 앞서 지난 6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로 강간죄 구성요건을 변경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개정안 발의가 아닌 처리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 130~150명의 의원이 동의해야 한다. 이번 법안 발의에 서명한 의원은 류 의원을 제외하고 12명이다. 일각에선 상대방의 동의라는 강간죄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불명확해서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 여부로 판단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류 의원은 “이미 법에 ‘양해’, ‘승낙’ 등 추상적인 법률용어가 있는데 ‘동의’ 개념만 입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법의 해석이나 판례와 법 해석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동의 의사가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내심의사만으로 범죄가 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했다.

류 의원은 이제 공론화와 설득의 과정을 통해 법안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일에 나서겠다고 했다. 간담회를 열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자료를 공유하면서 공론화 작업을 해나갈 예정이다.

“법제사법위위원회 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그렇다고 류호정 의원실 혼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법안을 공동발의한 분들과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신이 있는 만큼 상대방의 소신도 존중해야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문제의 중요성을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제 역할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도록 알리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노란색 아이템
류호정 의원의 #왓츠인마이백. 정의당 상징색인 노란색 아이템으로 가득한 가방. 비동의 강간죄 공동발의 요청서와 봉투, 병아리 아이패드 파우치, 우산과 마스크, 휴대전화 케이스 역시 노란색이다. ⓒ홍수형 기자

 

“나를 대변해주는 첫 정치인”
필요할 때 곁에 있는 사람으로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 초선, 최연소 국회의원. 류 의원을 둘러싼 수식어다. 평균 연령 55세, 남성 81%가 차지하는 국회에서, 그는 “평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각 잡힌 정장 대신 청바지와 원피스 차림으로 출근하고 2차가해로 힘들어하는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뜻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거부했다. 법안에 관심을 호소하며 100장의 노란색 대자보를 국회에 붙이기도 했다. 채용 비리 처벌 관련 법 제정, 포괄임금제 폐지, 월성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공론화 조작 의혹 진상 규명 등 청년, 노동자 문제에도 집중하고 있다.

스스로를 ‘입법노동자’라 부르며 기존 정치 문법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류 의원이 2020년 한국 정치에 부른 ‘유스퀘이크(youth+quake)’라 할 수 있있다. 유스퀘이크는 ‘청년들이 세상을 바꿔 내는 진원지 역할을 한다’는 뜻을 지닌 신조어다.

이런 ‘비주류성’은 여성 청년들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 아닌 원피스 논란이 일었을 때 많은 여성들이 류 의원을 가리켜 “나를 대변해주는 첫 정치인”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류 의원 지지자들은 온라인에 ‘류며든 사람들의 모임’ 오픈채팅, ‘류호정 아카이브’ 계정 등을 만들어 응원하고 있다. 이들은 류 의원의 발의한 법안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살피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정치에 참여한다. 류 의원은 “일상을 통제하는 정치인의 삶” 가운데 나를 지탱해주는 힘은 연대의 목소리이고, 자신 역시 사회적 약자 곁에 서고 싶다고 했다.

“제 행동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구나 생각하면 힘이 나요. 저 역시 필요할 때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국회의원은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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