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소리 모색’ 정세연 대표, 정은숙 PD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맞아
김학순 생애사·운동사 다룬
창작 판소리 ‘별에서 온 편지’ 공연

1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우리소리 모색과 여성문화네트워크가 기림의날 위안부 피해자 여성인권운동가들을 기리며 '별에서 온 편지' 판소리를 창작해 불렀다. ⓒ홍수형 기자
‘우리소리 모색’의 정세연(오른쪽) 대표와 정은숙 PD. ⓒ홍수형 기자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의 생애사와 운동사를 다룬 창작 판소리 <별에서 온 편지>가 지난 8월 14일 여성신문TV를 통해 최초 공개되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이해 제작된 이번 작품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관객 없는 녹화 공연으로 진행됐다.

 

작품은 서울특별시 성평등 기금을 받은 (사)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 임인옥)의 제안으로 ‘우리소리 모색(이하 모색)’에서 창작을 맡았다. 모색의 정세연 대표는 9세 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한 소리꾼으로, 전통과 창작 판소리를 아우르며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은숙 PD는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다가 판소리에 빠져 2015년부터 모색 공연의 기획과 제작을 맡으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공연기획자다.

두 사람은 <춘향가>나 <심청가> 등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이런 노력은 모색의 1집 1번 트랙 ‘서울사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별에서 온 편지>의 주역인 정세연 대표와 정은숙 PD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연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었는지요?

“공연 제안을 받고, 준비 기간이 짧아서 힘은 들겠지만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일본군‘위안부’ 이슈는 우리가 살면서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잖아요. 이번 기회에 이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고, 김학순의 삶을 소리로 기려보자는 마음이었어요.”(정세연)

-공연 제목 ‘별에서 온 편지’는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피해 할머니들께서 많이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의 영혼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해요. 별이 되신 피해자분들께서 반짝반짝 빛을 내시면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직접 만나 뵐 수는 없지만,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할머니들의 과거와 우리의 현재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정세연)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대목이 있으시다면요?

“기생 수업을 받는 대목이요. 김학순님이 어린 나이에 수양딸로 팔려 가서 겪었던 어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당시의 현장감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기생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수업하는 거로 작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한 합창 대목도 기억에 남는데요. 1946년 한국으로 돌아오신 후, 가족을 모두 잃고 50여 년간 힘들게 살아오셨는데, 그 세월을 어떻게 보여줘야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딸아 이리와 함께 놀자 드넓은 벌판을 훨훨 날으려무나’라는 가사를 반복해서 합창하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가장 뭉클한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정세연) 

1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우리소리 모색과 여성문화네트워크가 기림의날 위안부 피해자 여성인권운동가들을 기리며 '별에서 온 편지' 판소리를 창작해 불렀다. ⓒ홍수형 기자
‘우리소리 모색’이 8월 14일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별에서 온 편지’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홍수형 기자

 

피해자가 수양딸로 팔려 가
기생 수업 받는 대목 애착 가

-이번 공연에서는 의자를 활용한 움직임도 많이 표현됐는데요?

“소녀상 의자를 만들어서 거기에 오르거나 앉는 움직임과 밀고, 당기고, 숨는 움직임들을 끊임없이 넣었어요. 의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다양한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위안소에 들어가서 탈출하는 대목까지, 일본군과 마주할 당시의 상황을 의자를 통해 표현하며 소리를 했어요.”(정세연)

-소리꾼이 소녀상이 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장면인가요?

“이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이고, 누구라도 소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연출해보고 싶었어요. 코러스에 참여한 제자들도 등장하는 장면인데요. 이 대목에서 제가 소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 학생들이 소녀상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 소녀상에 손을 얹어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했고, 그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도 들어봤어요. 엔딩곡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인데 할머니들과 후세대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주고 싶었어요.”(정세연)

-제자들은 코러스에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피해자분들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셨던 나이대의 제자들이에요. 아직 배우는 친구들이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서 많이 느끼고,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후세대에 전해주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싶었어요. 학생들 역시 자신의 나이에 피해자들이 끌려갔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더 체화시켜 받아들이더라고요.”(정세연)

1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우리소리 모색과 여성문화네트워크가 기림의날 위안부 피해자 여성인권운동가들을 기리며 '별에서 온 편지' 판소리를 창작해 불렀다. ⓒ홍수형 기자
 ‘별에서 온 편지’ 공연에 참여한 ‘우리소리 모색’. 왼쪽부터 이재훈(코러스), 김민정(해금), 정세연(작창·소리), 황상은(타악), 양지원(코러스). ⓒ홍수형 기자

 

중고등학교 제자들과
2주간 합숙하며 공연 준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객 없이 영상으로만 제작됐는데요?

“지난 5월에도 창작 판소리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온라인 공연으로 대체한 경험이 있어요. 이렇게 영상으로 남기게 되면,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저를 몰랐던 사람들도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은 오히려 좋은 점이라 생각해요”(정세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공연계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엔 음악 플랫폼인 네이버 온스테이지나 여러 가지 매체들에서 국악공연의 영상 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희 역시 판소리의 뛰어난 예술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정은숙)

-공연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먼저 대사를 완성하고, 거기에 음을 붙여보았어요. 이렇게 작창을 한 뒤에 연기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머리에 그려보고 그걸 팀원들과 공유했어요. 이번 작품은 고인이 되신 '위안부'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고, 인생의 곡절마다 김학순님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셨을까에 집중해서 공연을 준비했던 거 같아요.”(정세연)

-2주간 합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양평에서 제자들과 함께 2주간 합숙을 했어요. 판소리는 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는 절제를 많이 하거든요. 하지만 이번 합숙에선 ‘자유’를 주제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틀을 깨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번 공연이 영상으로 남는 거라, 저희도 연습할 때 영상을 직접 찍어 보면서 어떤 것들이 더 자연스러운지 고민도 많이 했답니다.”(정세연)

“한창 비가 많이 오던 시기라서 혹시라도 산사태가 날까 전전긍긍하며 합숙을 했어요. 하루는 산사태 위기 경보 긴급재난 메시지를 받고 마을회관으로 대피를 했어요. 하룻밤을 회관에서 보냈죠. 다행히 산사태는 나지 않았어요. 이번 연습을 하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거 같아요.”(정은숙)

Q. 앞으로 모색에서 하고 싶은 작업이 있으시다면요?

“창작 작업도 꾸준히 하고, 대규모 관중이 있는 음악 페스티벌에서 마칭밴드의 삼바리듬에 맞춰서 신나는 민요를 불러보는 공연이나, 3·8여성대회와 같이 큰 여성 행사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민요를 부르면서 광화문 행진을 해보고 싶어요.”(정세연, 정은숙)

※ 우리소리 모색의 창작 판소리 ‘별에서 온 편지’는 유튜브 여성신문TV(https://youtu.be/MzIr2MSb-GQ)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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