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급진적이 되시오” 지젤 알리미의 교훈
[반하라 칼럼] “급진적이 되시오” 지젤 알리미의 교훈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0.08.19 19:00
  • 수정 2020-08-19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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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알리미는 낙태처벌법(1920)을 없애고 낙태합법(시몬 베유법 1974) 쟁취까지, 법정 안팍의 투쟁을 이끈 횃불과 같은 여성운동가다. 그는 1972년 강간당해 임신한 16세 소녀의 낙태를 도운 엄마와 낙태한 딸을 기소한 ‘보비니재판’에서 모녀 변호를 맡아 승소한다.  ⓒ유튜브 캡처
지젤 알리미는 낙태처벌법(1920)을 없애고 낙태 합법화 쟁취를 이끈 여성운동가다. 그는 1972년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임신한 16세 소녀와 낙태를 도운 엄마를 기소한 ‘보비니재판’에서 모녀 변호를 맡아 승소한다. ⓒ유튜브 캡처

불의에 맞선 투사, ‘지젤 알리미’(1927~2020)가 지난 7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지젤, 고마워요!’ ‘지젤 알리미를 팡테옹(선정된 유공자 국가안장소)으로!’ 장례식에 모인 수많은 추모객들은 여성운동 노래를 부르며 지젤의 유지를 새기고 그에게 우러나는 고마움을 외쳤다.

지젤 알리미는 반식민주의 인권 변호사였고 낙태합법을 쟁취했던 여성운동의 주역이었다. 또, 한권의 범죄추리소설을 포함  20권 가까운 책들(여성이슈)을 낸 문인이었고 ‘미테랑’ 집권시에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도 잠시 했지만 사회단체 운동가로서 프랑스 사회를 광명으로 진일보시켰던 투사였다. 그를 ‘팡테옹’으로 안장해야 한다고, 외친 추모객들은 지젤이 프랑스 사회를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젤 알리미는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튀니지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파리에 가서 변호사가 되었고 22세에 튀니지에 돌아와 변호사 일을 시작한다. 1956년부터는 튀니지를 떠나 알제리아의 군사법정에서 식민지 ‘정치범’들을 변호하고 사형수 구명운동을 벌이면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식민지배 반대운동을 이끌어냈다. 식민지들이 독립한 후엔 프랑스의 여성운동에 주력했는데 그의 수많은 활동을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인권변호사로서 알제리 독립전쟁기(1954-1962)에 체포된 ‘민족해방전선(FLN) ‘전사들의 변호를 맡게되면서 고문폭력에 의존하는식민지배의 실체를 보고 그 부당함에 맞서 싸웠다. 특히 22세의 FLN 전사인 ‘쟈밀라 부파샤’의 변호를 맡게 되었을때 프랑스 군대가 쟈밀라를 유리병으로 강간하는 등, 성고문한 사살을 알게되자 그 만행을 전 사회에 알렸고  쟈밀라 부파샤가 사형선고를 받자 구명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사면을 받아냈는데 이 사건으로  지젤 알리미는 반식민지배 운동의 상징으로, ‘위험인물’로 각인되었다. 프랑스 군대 안의 극우 비밀 사조직(OAS)은 지젤제거 명령을 내려서 생명을 위협했고, 한 번은프랑스 군대에 체포되어 고문이 벌어졌던 건물에 감금되기도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새  처형될 수도 있갰다는 공포속에서도 그는 굴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두 번째, 지젤 알리미는 낙태처벌법(1920)을 없애고 낙태합법(시몬 베유법 1974) 쟁취까지, 법정 안팍의 투쟁을 이끈 횃불과 같은 여성운동가였다. 낙태처벌법 폐지운동을 1971년 시작했던 지젤은 1972년 강간당해 임신한 16세 소녀의 낙태를 도운 엄마와 낙태한 딸을 기소한 ‘보비니재판’에서 모녀 변호를 맡게된다. 그는 명성있는 의사들을 법정에 세워서 낙태의 필요성을 증언케하고 탁월한 변론으로 ‘보비니 재판’에서 승소했는데 이 재판으로 사회여론을 낙태합법화에 설득적으로 몰고 감으로써  1974년 낙태합법을 쟁취하는 주된 동력을 만들었다. 

작년 ‘낙태죄’ 처벌 조항을 ‘한시적으로’ 막아낸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와서 우리는 안도했지만 여전히 불법에서 임신중단(낙태)이 필요한 여성들은 족쇄에 묶인 ‘노예’의 처지에 있다. 50년 전 지젤 알리미의 집요하고 전략적인 투쟁각오로 나서 이번 국회에서 합법화 발의와 통과를 쟁취해야 한다.

낙태합법화 이후 지젤은 성폭력과 싸웠다. 법개정이 필요했다. 강간은 금기여서 어렵게 고소해도 최대한 저항했다는 물리적 상처를 증명하도록 피해자를 몰아갔다. 가해자 처벌을 한다해도 강간범죄가 아닌 것으로 바꿔서 가벼운 형량을 주고 있었다. 지젤 알리미는 1978년 ‘강간 재판’에서 두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아서 기존 재판관행을 뒤짚는데 성공한다. 세명의 가해자들을 강간범으로 인정시켜서 가중처벌받도록 하면서 승소했는데 이 ‘강간재판’을 통해 ‘강간’을 다시 정의하게되고 강간범죄 형량이 가중된 법개정안이 1980년에 통과되었다. 강간범죄 재정의와 형량가중 처벌을 위한 법개정은 디지탈 성범죄 시대에 더 시급히 쟁취해야만 하는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2019년 르몽드 신문 인터뷰에서 92세의 지젤에게 “늙지 않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젤은 인터뷰 끝에 “여성의 존엄성을 공격하는 몸짓, 말씨와 상황들 그 어떤 것도 그대로 넘겨서는 안되고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까지 그의 법정투쟁을 다룬 세 편의 영화가 나왔고 작년엔 ‘법 밖에서’ 연극도 상연되었는데 지젤 역을 맡았던 연극배우는 지젤을 추모하면서 지젤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방어태세를 내려 놓지 마세요, 절대로요, 그리고 급진적이 되세요” 라고, 또 지젤이 강조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성들 각자는 약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연대해서 싸우기만 한다면 여성들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우리도 연대만 이뤄낸다면 못이룰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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