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여군 최초 상륙함 함장 안미영 중령
임관 후 17년간 ‘여군 최초’ 타이틀 갱신
올 7월 제17대 성인봉함장 취임

“지금은 남성만 군인이던 세대에서
모두가 군인인 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성별이 성취를 결정하지 않는 시대 올 것
여군 제독·참모총장 탄생도 기대해
양성평등 정책제도, 남성에게도 좋아”

지난 7월 24일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한 안미영 중령이 승조원들과 함께 성인봉함 갑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해군 제공
지난 7월 24일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한 안미영 중령이 승조원들과 함께 성인봉함 갑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해군 최초 여성 1급 함정 전투정보관, 여군 최초 해상지휘관, 여군 최초 상륙함 함장.... 안미영 중령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여군으론 처음으로 2017년 고속정 편대장을 맡아 부산항만 방어와 남해 경비를 수행하는 해군 3함대 예하의 321 고속정 편대를 이끌었다. 유능한 지휘관으로 인정받아, 지난 7월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하면서 또다시 역사를 썼다.

취임 소감을 말할 때마다 안 중령은 “무거운 책임감”을 고백했다. “여군 초창기 기수다 보니 제게 기회가 왔고, ‘최초’ 타이틀이 붙은 것이다. 제가 잘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는 생각으로 잘하려고 노력해왔다. 소통하고 책임지고 앞장서는 지휘관이 되고 싶다.”

임관 후 17년이 흐르는 동안 안 중령에게는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이 생겼다. 워킹맘이자 출산·육아를 경험한 선배로서, 요즘 안 중령은 일과 삶의 균형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남군도 육아나 돌봄을 위해 눈치 보지 않고 휴직할 수 있을 때, 여군도 경력단절 걱정 없이 돌아와 능력을 발휘하고 승진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 해군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지난 7월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하며 여군 최초로 상륙함 함장에 오른 안미영 중령 ⓒ해군 제공
지난 7월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하며 여군 최초로 상륙함 함장에 오른 안미영 중령 ⓒ해군 제공

안 중령은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7월 진해 5전단으로 이동했다. 지휘관 업무에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을 앞두고 바쁜 시기에 인터뷰를 청했다. 취임식 이후 맞는 네 번째 주말, 안 중령은 함정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 중간중간 무전 교신음이 들렸다. “기자님, 오늘도 일하시네요?”

- 함장님이야말로 휴일에 출근하셨네요?

“아 예(웃음). 배에 왔습니다. 곧 상부 평가도 받고, 부대 지휘 계획도 보고해야 해서요. 지휘관이라는 게 그냥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미리 준비하고 공부할 게 많습니다.”

안 중령을 아는 해군 관계자들은 그가 ‘워커홀릭’이라고 했다. 본인도 부인하지 않았다. “제가 조금 ‘빡센’ 스타일이긴 해요. 함정과 장비에 대한 전문지식과 운용능력, 대원들 간 팀웍이라는 근육은 평소에 단련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겸손한 태도 뒤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오래도록 걸어온 사람 특유의 단단함이 보였다.

안 중령이 지휘하는 성인봉함은 2600톤급 상륙함이다. 상륙작전 시 해상으로부터 목표지역으로 상륙전력을 수송하며, 해외파병, 인도적 지원, 재난구조지원 등 국가 대외정책 지원 임무도 수행한다. 길이 112m, 항속거리 약 1만2,000㎞, 승조원 120여 명, 40㎜와 20㎜ 함포를 보유하고 있고 상륙병력과 전차·헬기 등을 탑재할 수 있다.

함장의 하루는 숨 가쁘다. 안 중령은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대원들의 일과를 파악하고, 각 부서 담당 장교들에게 일간·주간·월간 목표 관련 지시할 내용을 차분히 정리한다. 이어 함내 장교들의 회의인 ‘사관회의’를 주관한다. 항해/지원부장(부함장) 등 부서장들이 그날의 날씨부터 군수현황까지 함정의 전반 상황을 보고하고, 주요 업무와 우선순위를 확인하고, 항박일지 등 각종 보고서를 결재하는 자리다. 함정 근무자 전원이 참석하는 ‘일과정렬’ 시간에 대원들에게 지시·교육할 사항, 안전대책 등도 여기서 확인하고 논의해 결정한다. 회의가 끝나면 함정을 순찰한다. 함장실로 돌아간 뒤에도 각종 공문서 처리 결재, 상급 부대 회의 참석은 물론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있거나 건강이 안 좋은 대원들을 면담하고 필요한 조처도 해야 한다. 바다로 출항할 때는 함정의 조종실 격인 함교에서 운영과 지휘를 맡는다.

유능한 지휘관의 덕목으로 그는 ‘소통’을 꼽았다. “혈관이 막히면 몸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듯이, 함 내 소통이 막히면 제대로 임무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소통하는 지휘관, 책임감 있는 지휘관, 앞장서는 지휘관이 되고 싶습니다.”

- 원래 해사에 지원하려다가 부모님의 반대로 일반대학에 진학하셨고, 다시 해군사관후보생에 지원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군의 길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하셨나요?

“해군이 여성에게 문호를 막 개방할 때 도전정신을 갖고 지원했죠. 군함을 타고 오대양을 누비며 국익을 지키고 국제평화에 이바지하는 모습에도 매력을 느꼈고요. 잔잔한 해수면을 미끄러지며 항해할 때도, 취사하기 힘들 만큼 험난한 날도 있지만, 어느 때에도 해군은 영해수호를 멈추지 않습니다. 제 지휘하에 대원 모두가 힘을 보태 함정을 완벽하게 운용하고 임무를 완수할 때 전율을 느낍니다.”

- 첫 여군 상륙함 함장에 오르며 많은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임관 이래 ‘여군 최초’라는 수식어를 거듭 갱신해 오셨고요.

“매우 영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여군 초창기 기수이기에 최초 타이틀이 붙었고, 그동안 도전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제가 잘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계속 열린다는 생각으로 더욱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주어진 임무를 탁월하게 완수해내고, 유능한 지휘관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최초의 여군’으로 몇 번 불렸다고 해서 제가 여군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여군의 표준’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여군들의 활동에도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여군들의 활약이 눈부신 시대다. 전투 전문가와 여군의 조합이 어색했던 것도 옛말이다. 2003년 전투함정에 첫 여군 장교가 배치됐고, 2005년 여군 헬기 조종사, 2006년 해병대 여군 전투부대 지휘관, 2011년 여군 해상초계기 조종사와 고속정 정장, 2017년 여군 함장이 탄생했다. 잠수함에도 여군 배치를 추진 중이다. 2022년까지 장교 정원의 10.7%, 부사관 정원의 8.5% 이상이 여군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 지난 17년간 여군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초창기만 해도 여군은 극소수였어요. 길을 가면 ‘여군이다’라며 쳐다볼 정도였죠. 점점 여군 장교들이 늘고, 지휘관에 오르는 여군도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여군의 존재가 자연스러워졌어요. 제가 처음 고속정에서 해상지휘관을 할 때만 해도 후방에 머물렀지만, 지금 후배들은 최전방에서 고속정 정장, 전투함 소령 함장도 잘 해내고 있습니다.

해군은 2015년부터 전군 최초로 양성평등센터를 운영하며 여성들의 임무 수행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지휘관 주관 여군 간담회도 열고, 부대마다 선임 여군 장교들이 ‘양성평등담당관’을 겸임하며 상담을 제공합니다. 활동 예산도 책정돼 있어서 여군들끼리 식사나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킹을 하거나 고충을 이야기하는 자리도 가끔 마련합니다. 여군 초창기부터 지켜본 제게는 큰 변화인데요. 후배들은 ‘이게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군 사회에선 여전히 남성이 주류입니다. 주요 보직을 차지한 여군은 “독한 여자” 또는 “여군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던데요.

“여군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훌륭한 자질을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우수하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나는 여군이라 남군보다 못하다’면서 군에 온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높이 올라갈수록, 한 번만 실수해도 성별 프레임에 묶여서 ‘여자는 못한다’, ‘여자 지휘관은 대원들과 소통이 안 된다’는 시선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래도 자기검열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한 번 더 숙고해서 신중하게 결정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 군의 ‘유리천장’이 완전히 깨지는 날, 여군 참모총장이 탄생하는 날도 언젠가 오겠죠.

“네. 여군 제독, 여군 참모총장이 나올 거라고 봐요. 그만큼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남성만 군인이 되던 세대에서 여군과 남군이 자연스레 어울려 근무하는 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예요. 사관학교도 여생도가 들어오니 분위기가 무척 다릅니다. 여자 동기와 함께 배를 타면서 근무한 남군들, 옆에 여성 동료가 항상 있었던 남군들의 생각은 또 다르겠죠. 그런 세대가 주류를 이룰 때, 성별을 떠나 누구나 능력에 맞는 자리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요.”

지난 7월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한 안미영 중령이 함장 업무를 보고 있다. ⓒ해군 제공
제17대 성인봉함장이 된 안미영 중령이 승조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해군 제공
지난 7월 제17대 성인봉함장에 취임한 안미영 중령이 함장 업무를 보고 있다. ⓒ해군 제공
함장 업무를 보고 있는 안미영 중령. ⓒ해군 제공

안 중령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탁월함을 증명한 여성들, 대한민국 여군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 옆에는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경력단절되거나 사라진 수많은 여군들이 있다. 안 중령이 임관한 이후 20여 년간 해군에 남은 여군 동기는 절반으로 줄었다. 안 중령과 함께 임관한 OCS 98기 250여 명 중 여군은 약 10명뿐이었지만, 그마저도 높은 진급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장기복무에 실패하거나, 결혼·출산·육아 등으로 군을 떠났다.

안 중령도 어느덧 5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군 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여느 엄마 군인들처럼 출동과 근무지 이동이 잦다 보니 아이를 데리고 있을 여력이 없어 시댁에 맡겨 기른 지 오래다. 그의 남편과 시어머니가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모든 군인이 그렇게 생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육아·돌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군인들은 지휘관이, 조직이 먼저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안 중령은 강조했다.

“해군의 일·가정 양립 정책제도는 훌륭합니다. 문제는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느냐죠. 저도 결혼 전엔 ‘군인이 나라 지키는 게 우선이지, 왜 애가 아프다고 휴가 가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힘들더라고요. 부대 참모 신분으로 휴직하려니 마음이 더욱 편치 않았습니다. 그 어려움을 아니까, 지휘관인 제가 먼저 부대원들을 살피고 도우려고 합니다. 남군이든 여군이든, 가능하면 휴가를 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돕고, ‘이런 제도를 써보지 않겠냐’ 먼저 권하고요. 저는 운좋게도 많은 분들의 이해와 배려 덕에 무사히 육아휴직을 했다가 복귀할 수 있었어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일·가정 양립, 양성평등 정책 제도는 여군에게만 좋은 것이고 ‘역차별’이라는 불만도 나오는데요.

“여군들이 일하기 좋아진 것은 맞습니다. 그런 제도,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 남군들에게도 좋습니다. ‘육아는 엄마가 하는 일’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시대잖아요. 남군들도 육아휴직을 많이 하는 추세고요. 한 남군 후배는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애기가 학교에 못 가고 집에 있는데 볼 사람이 없어서 제가 가겠다’며 휴가를 냈어요. 시간이 가고 세대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문제라고 봅니다. 윗선에서 관심 갖고 적극적으로 지시하면 훨씬 빨리 변하겠죠. 다음 달 양성평등주간을 맞아서 부대 내 임신부 체험, 자녀 돌봄 행사도 준비하고, 대원들이 육아나 돌봄을 위해서 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더라고요. 저희 부대에서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지원할 계획입니다.”

- ‘해군은 남성의 공간’이라는 통념을 깬다면 더 많은 인재들이 찾아오겠죠. 해군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군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습니다. 오직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성별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두면 안 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다는 군인의 소임을, 그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길 바랍니다. 군인으로 살다 보면 외롭고 힘든 순간도 있으므로 다른 누구의 뜻이 아닌, 나의 의지로 이 길을 택해야 합니다. 군복을 입고 군인으로 살아갈 나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다면 꼭 도전하길 바랍니다.”

여군 최초 상륙함 함장에 오른 안미영 중령 ⓒ해군 제공
안미영 중령과 작전관 김현민 대위. ⓒ해군 제공

 

안미영 중령은
학사사관(OCS) 98기, 2003년 7월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광개토대왕함(DDH) 전투체계보좌관, 성인봉함(LST) 갑판사관, 청주함(FF) 전투정보관, 1함대 지휘통제실 당직사관, 참-275호(PKM) 정장, 대천함(PCC) 항해/지원부장, 321고속정편대 편대장, 해군본부 기지발전기획담당 등을 거쳐 지난 7월 성인봉함(LST) 함장에 취임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