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의정활동 관련 기사 8건
같은 날 '원피스' 기사는 32건
7·9·12대 남장 김옥선 의원
11대 황산성·19대 김재연 의원 등
여성 정치인들 모두 ‘패션’ 지적 당해

21대 국회는 ‘SKY출신 50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국회 평균 연령은 54.9세이며 남녀 성비는 81:19다. ⓒ여성신문
21대 국회는 ‘SKY출신 50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국회 평균 연령은 54.9세이며 남녀 성비는 81:19다. ⓒ여성신문

 

류호정(28) 정의당 의원이 쏘아올린 여성 정치인의 옷차림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많은 언론이 류 의원의 원피스 논란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2003년 백바지 등원 논란’을 비교하고 있다. 국회에 옷차림으로 논란을 일으킨 두 번째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70년 국회 역사 속에서 류 의원은 옷차림 지적을 받은 수많은 여성 의원들 중 한 명일 뿐이다. 

△50대 고학력 남성의 얼굴을 한 국회

21대 국회는 ‘SKY출신 50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국회 평균 연령은 54.9세로 50대가 177명에 달하며 20대 의원은 단 2명이다. 30대 조차도 11명에 불과하다. 남녀 성비는 81:19로 여성 의원의 수는 전체 300명의 59명을 차지한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묶어 부르는 일명 'SKY' 출신도 총 103명이다.

류 의원의 옷차림을 바라보는 20·30대들은 “20대 나이 직장인의 평범한 출퇴근 복장으로 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공무원인 황정아씨는 “공무원 여성들도 직장에 출퇴근할 때 자주 입는 옷”이라며 “국회의원 또한 일종의 공무원인데 문제적인 옷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업 연구원인 이모(34)씨는 “처음에는 국회에서 적절한 옷차림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니 류 의원과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은 편하게 입고 출퇴근하는 복장으로 보였다”며 “그동안 류 의원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국회의 역사 속에서 여성 정치인의 옷은 화제였다. 27세의 나이에 ‘남장’을 하고 출마하고 이후 3선 의원을 지냈던 김옥선 의원부터 바지 정장을 입고 국회에 출근했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장면을 찍혀 비판 받은 황산성 장관, 오늘의 류 의원까지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남성이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국회에 남장을 하고 들어갔던 여성 의원들이 있었고 지금은 그 자체에 반발하는 여성 의원들이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처음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정면으로 ‘독재자’로 말해 자진사퇴까지 한 ‘김옥선 파동‘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김 전 의원의 ’남장‘은 “남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은사의 말과 일제 말기 학도병 징집 이후 아들 노릇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김 전 의원이 7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 여성 국회의원들의 옷은 모두 한복이었다. 임영신, 박현숙 전 의원 등은 모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남성 동료 의원들의 모욕을 당해야 했다.

정장 차림이라면 다 괜찮았을까? 아니다. 김 전 의원 이후에도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바지 정장을 입고 국회에 출근한 여성 의원은 드물었다.

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황산성 전 장관은 1993년 단정한 바지 정장 차림을 하고 국회 상임위원회에 나섰을 때 우연히 언론 카메라가 포착한 사진 한 장에 비판 여론이 끓었다. 박 전 장관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잠깐 넣은 것이 “감히 바지를 입은 데다 자세까지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1996년에 이미경 통합민주당 의원은 바지 정장을 입고 국회에 출근하며 동료 여성 의원들과 ’여성 의원 바지 입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재연 전 의원은 국회 등원 첫날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보라색 정장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김 전 의원의 등원 직후 “’술집 여자 차림‘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판이 쏟아지지 않은 여성 정치인에게는 ’패션 정치‘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나경원 전 국회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몇몇 여성 정치인을 두고는 그들이 외부활동을 하는 날마다 입은 옷들을 나열하고 점수를 줬다.

남성 의원들의 차림 중 논란이 일었던 사례는 두어 건에 불과하다. 유시민 당시 국민개혁정당 의원이 2003년 넥타이 없이 흰색 면바지를 입고 출석했다가 동료 의원들로부터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야유를 받았다. 그는 당시 ”경직된 국회의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고 오랫동안 본회의장에 드나들었다.

2017년 ‘금요일엔 소매 없는 옷 입기(#SleevelessFriday)’ 캠페인에 참여한 미국 여성 하원의원들. CBS 뉴스 여성기자가 민소매 차림이라는 이유로 하원의장실 로비 출입을 거부당하자 시작된 캠페인이다. 사진=트위터
2017년 ‘금요일엔 소매 없는 옷 입기(#SleevelessFriday)’ 캠페인에 참여한 미국 여성 하원의원들. CBS 뉴스 여성기자가 민소매 차림이라는 이유로 하원의장실 로비 출입을 거부당하자 시작된 캠페인이다. 사진=트위터

 

△ 국회의원이 ’완판녀‘라고? ‘완판남’은 왜 없을까

언론진흥재단 뉴스검색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990년 1월1일부터 2020년 8월12일 현재까지 검색어 ’류호정‘을 제외한 ’남성 정치인 패션‘을 검색하면 단 128건에 불과하다. 이중 실제로 남성 정치인의 패션과 정치적 메시지 등을 분석한 기사는 해외 사례를 소개한 기사까지 포함해도 30여 건에 불과하다. 반면 ’여성 정치인 패션‘은 같은 기간 759건에 달한다. 여성 정치인의 패션을 두고 ’완판녀‘ ’미녀 정치인 패션 공습‘ 등 부적절한 제목을 단 기사도 상당수다.

1988년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해 제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정숙 여성정치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이번 류 의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지금 이렇게 논란이 인 것 자체가 여섬혐오적“이라고 잘라말했다. 김 이사장은 자신이 국회의원을 지낸 1990년대와 2000년대 당시 여성 국회의원은 화려하지 않은 화장과 단정한 치마 정장만이 허용되고 바지 정장을 입었던 자신과 동료 여성의원들을 두고 손가락질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왜 여성 의원들은 그들의 의정활동보다 옷차림과 외모가 화제가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여성을 일종의 악세사리로 보고 있다. 우리는 여성을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권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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