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⑮

 

설악산의 울산바위 아래, 계조암 입구에는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다. 높이가 어른 키보다 조금 더 높고, 4~5명 정도가 팔을 벌려서 감싸안을 수 있는 크기이다. 미얀마에도 이런 흔들바위가 있다. 그러나 규모나 위용 면에서 설악산 흔들바위는 비교대상도 되지 않는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높은 산 정상의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모습을 보면 놀라서 입을 다물기 어렵다. 높이 7.6m, 둘레 24m의 거대한 바위는 양곤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몬(Mon) 주에 있는 해발 1,102m의 짜익티요(Kyaiktiyo)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1,102m 산 정상에 서있는 황금바위의 위용. ©조용경
1,102m 산 정상에 서있는 황금바위의 위용. ©조용경

 

미얀마 사람들은 오래 전 이 바위 위에 탑을 세우고, 그 옆에 절을 지어서 황금바위사원(Golden Rock Pagoda)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이곳을 두 차례 방문했다. 양곤에서 거리상으로는 200km정도이지만 짜익티요 황금바위사원은 정말 먼 곳이다. 포장은 되어 있지만 길이 좁고, 통행하는 차량이 많아서 양곤에서 차로 네 시간 반 가까이를 달려야 중간기착지인 낀뿐(Kinpun)이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요즘은 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거기서 덤프트럭 버스를 타고 가파른 산길을 40분 정도 달려 올라가면 황금바위사원 터미널에 도착하게 된다.

낀뿐 마을의 트럭 버스 정류장. ©조용경
낀뿐 마을의 트럭 버스 정류장. ©조용경

 

트럭버스로 짜익티요 산을 오르는 코스는 좁고,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문자 그대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산길이었다. 두 번째는 길이 조금 좋아진 느낌은 있었지만, 여전히 험하기 이를 데 없는, 10km 조금 넘는 이 산길에서 미얀마의 트럭버스 기사들은 거의 곡예 수준으로 차를 몰았다. 이 트럭버스를 타면 약 40분의 시간 동안 간이 떨어질 것 같은 최고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초에는 야테따웅(Yathetaung)이라는 도시에서 짜익티요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어서 황금바위 사원 참배가 매우 편리해졌다고 한다. 한국과 미얀마 회사 간의 합작사업으로 건설된 이 케이블카는 정원 8명인 44대의 케이블카가 약 15분 만에 승객을 정상까지 실어주는데, 탑승료는 1인당 10달러라고 한다.

짜익티요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조용경
짜익티요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조용경

 

필자가 처음 이곳에 간 것은 2014년 3월 초,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한낮이었다. 황금바위 반대 쪽 산비탈의 고산족 마을을 돌아보는 것까지 두 시간 반 정도를 머물렀다. 햇살에 달아 오른 대리석 바닥이 너무도 뜨거워서 발바닥이 불고기처럼 익어버리지 않을까 싶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두 번째 방문은 2016년 12월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는 일정이었는데, 절 입구에 도착하니 저녁 여섯 시가 넘었고, 구름까지 짙게 낀 탓에 이미 주변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황금바위 너머로 지는 일몰이 일품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이미 해는 져 버렸다. 절 입구의 계단에서 신발을 배낭에 넣고 계단을 오르니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받아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는 황금바위가 위용을 드러냈다.

한밤중에 광채를 발하는 황금바위. ©조용경
한밤중에 광채를 발하는 황금바위. ©조용경

 

이 황금바위 사원을 제대로 보려면 낮의 모습과, 일몰장면, 야경, 그리고 일출 장면을 다 보아야 한다는데, 2014년의 첫 방문은 당일치기 여행으로 낮 시간에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가야 해서 무척 아쉬웠었다. 그러다가 4년 만에 드디어 야경과, 잘하면 일출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흥분으로 가슴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오래 전 부처님으로부터 불발 한 가닥을 받아서 미얀마로 온 ‘따익타(Taik Tha)’라는 수도승이 이 머리카락을 당시 왕에게 바치면서, 자신의 머리 모양을 닮은 바위 아래에 불발을 안치하고 절을 지으면 나라가 융성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다.

멀리 달이 비추어주는 밤의 황금바위. ©조용경
멀리 달이 비추어주는 밤의 황금바위. ©조용경

 

왕의 명을 받은 신하들이 온 천지를 헤매고 다닌 끝에 깊은 바다 속에서 그 바위를 찾아냈고, 신들의 왕인 ‘따쟈민’(Thagyamin)에기 기도를 드려 그의 도움으로 이 돌을 가장 높은 짜익티요 산 정상에 올려놓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바위 아래 불발을 안치한 다음 절을 지었는데, 이 불발(佛髮)의 힘이 거대한 바위를 단단히 붙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 전설의 핵심이다.

이 황금바위사원은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Mahamuni Pagoda)와 함께 미얀마 불교의 3대 성지의 하나로, 미얀마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가마를 타고 참배하러 가는 노인. ©조용경
가마를 타고 참배하러 가는 노인. ©조용경

 

특히 황금바위까지 세 차례를 걸어서 오르면 재물과 건강 및 해탈의 복을 받게 된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4~5 시간 소요되는 트레킹 코스를 걸어올라 가기도 한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저축을 하는 등의 준비를 해서, 전국 각지로부터 며칠씩 걸려서 이곳을 찾아 온다고 하니, 그 열정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때마침, 혼자서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네 사람이 메는 가마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니 그 신앙심에 숙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황금바위 앞에 좌정하고 기도하는 스님들. ©조용경
황금바위 앞에 좌정하고 기도하는 스님들. ©조용경

 

이곳에는 전국 각지의 스님들, 심지어는 태국이나 캄보디아, 심지어는 멀리 스리랑카의 스님들까지도 찾아와 기도를 한다고 한다. 밤 늦은 시간까지 황금바위 앞의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치열하게 기도를 드리는 스님들의 뒷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황금바위에 금박지를 붙이며 소원을 비는 남자들. ©조용경
황금바위에 금박지를 붙이며 소원을 비는 남자들. ©조용경

 

참배객들은 거의가 한 묶음에 5달러 혹은 10달러씩 하는 금박지를 사서 황금바위의 표면에 붙이면서 소원을 빈다.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바위 앞으로 다가서서 금박을 정성스레 바위에 붙인 다음, 바위에 두 손을 대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한다. 그들에게는 5~10 달러가 결코 가벼운 금액은 아닐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성들은 황금바위를 만질 수 없고, 심지어는 황금바위를 둘러 싼 구획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금박을 산 여성들도 가족 혹은 다른 남성에게 부탁을 해서 붙여야 한다니, 여성들의 그 안타까운 심경을 부처님은 다 헤아려 주실까.

밤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황금바위 주변에다 저마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정성스럽게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른다. 그 간절한 모습이 참으로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었다.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는 사람들. ©조용경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는 사람들. ©조용경

 

광장에서 담요 한 장으로 밤을 지내는 순례자들. ©조용경
광장에서 담요 한 장으로 밤을 지내는 순례자들. ©조용경

 

넓은 광장 곳곳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대리석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담요 한 장으로 온 몸을 감싼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주말이 되면 워낙 인산인해를 이루는 바람에 자리에 눕지도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서 밤을 지새는 사람들의 수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해발 1,100m 높이인 이 황금바위 사원의 새벽 기온은 12월과 1월의 경우 영상 10도까지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출 모습을 촬영하려고 밖으로 나가니, 바깥에서 밤을 지샌 듯 한 많은 사람들이 황금바위 주변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명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바위. ©조용경
여명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바위. ©조용경

 

황금바위와 그 위에 세워진 황금색 파고다는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이 되자, 짙은 구름 사이로 살짝 살짝 비치는 햇살을 받아 휘황찬란한 광휘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황홀한 모습은 불교도가 아닌 사람에게까지도 가슴속에 차오르는 뿌듯함을 선물했다.

새벽부터 탁발하는 동자승들. ©조용경
새벽부터 탁발하는 동자승들. ©조용경

 

호텔 부근까지 왔을 때 한 무리의 동자승들이 탁발을 하며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가장 앞에 선, 다른 동자들과는 달리 흰옷을 입은 꼬맹이 동자승이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갑자기 손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주머니에 남은 1달러 짜리 몇 장과 사탕 한 봉지를 발우 속에 넣어 주었다. 호텔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한 후 터미널로 나가니, 터미널은 이른 아침부터 올라오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내려가는 사람이 워낙 많은 시간이라 그런지 트럭이 오기가 무섭게 서로 먼저 타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통에 도무지 끼어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숫자가 많았던 우리 일행은 따로 교섭을 한 끝에 한 대 가격에 약간의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간신히 차 한 대를 얻어탈 수 있었다.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는 황금바위. ©조용경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는 황금바위. ©조용경

 

짜익티요를 떠나며 돌아 본 황금바위는 아침햇살을 받아서 찬란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60여 년에 걸친 영국의 혹독한 식민지배와 50여 년의 부패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삶 속에서도 깊은 불심과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나라 미얀마. 오랜 세월에 걸친 혹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미얀마의 내일은 저 황금빛처럼 밝고 찬란한 것이기를 기원하며 산을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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