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피해자를 넘어 인권운동가로 서다
[허스토리] 피해자를 넘어 인권운동가로 서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0.08.14 06:00
  • 수정 2020-08-14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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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991년 공개 증언 후
전시 성폭력 문제 알리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의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승화시켜 이 순간에도 인권과 평화를 실천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의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승화시켜 이 순간에도 인권과 평화를 실천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뉴시스

 

“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이 종군 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일본을 상대로 재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 중)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공개 증언한 김학순 등 피해자를 기리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2017년 제정한 국가기념일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김학순이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이름 없는 피해자’로 살아왔다. 이 역사적인 증언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의 중요한 외교적 현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학순 이전에도 언론을 통해 ‘위안부’ 피해를 고발한 이들이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의 배봉기(1975년), 한국의 이남님(1982년), 태국의 노수복, 베트남의 배옥수(모두 1984년)도 세상에 피해를 알렸다. 그러나 1970~80년대 이들의 말하기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은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일 뿐이었다.

과거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징용을 뜻하는 ‘처녀공출’로 불리거나 ‘정신대’와 구분하지 않았던 이들은 1990년대 한국에서 ‘위안부’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위안부’라 불리며 역사에 균열을 내며 세상 앞에 등장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공개적으로 최초 증언한 고 김학순(1924~1997)의 생애를 다룬 창작 판소리 공연 ‘별에서 온 편지’가 LSKF 오후 6시30분 여성신문TV 유튜브 채널에서 온라인으로 중계된다. ⓒ별에서 온 편지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공개적으로 최초 증언한 고 김학순(1924~1997). ⓒ별에서 온 편지

 

집회·국제무대서 역사적 증언

김학순의 용기는 많은 것을 바꿨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국가 책임으로 느끼며 잇따라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외면했던 ‘위안부’ 문제를 평화와 인권 이슈로 견인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여성학자, 활동가는 첫 공개 증언 이듬해인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 방한을 앞두고 주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과 희생자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수요시위’를 열었다. 이후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때를 제외하면 ‘수요집회’는 28년 간 매주 빠짐없이 열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장기 집회 기록이다. 수요시위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일제 강점기 과거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기여했다. 피해자들은 일곱 번째 수요시위부터 참여했다. 당시엔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가렸던 피해자들은 꿋꿋하게 수요시위에 참석해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 인정과 공식 사죄를 요구했다. 비바람과 노환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역사 속 숨겨진 진실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세계적으로 공론화한 ‘역사적 증언자’다. 학자, 활동가들의 조력으로 피해자들은 ‘부끄러운 몸’에서 ‘피해 생존자’로 섰고, 다시 스스로를 ‘여성인권활동가’로 정체화하며 후세대에게 일본과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후세대의 역할을 주문한다.

2016년 5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4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아시아 각지에서 모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복동, 길원옥, 이네스 마젤란 곤살베스(동티모르), 에스테리타 바스바뇨 디(필리핀), 이용수, 안점순 할머니. ⓒ여성신문
2016년 5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4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아시아 각지에서 모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복동, 길원옥, 이네스 마젤란 곤살베스(동티모르), 에스테리타 바스바뇨 디(필리핀), 이용수, 안점순 할머니. ⓒ여성신문

 

“여성인권활동가라 불러달라”

“일본군은 나를 위안부라고 불렀지만 내 이름은 위안부가 아니라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용수다. 일본 총리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공식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는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나 16살에 일본 군인에게 끌려갔던 그는 40여년이 흐른 뒤 피해를 증언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여성인권운동가의 삶이 시작됐다.

2007년 2월 15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의회에서 사상 첫 위안부 청문회에 선 그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증언하며 전시 성폭력 문제를 미국 사회에 알린다. 이용수·(고)김군자·(고)얀 오헤른 세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 가 하원의원들 앞에서 ‘위안부’로서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생생히 증언한다. 의원들의 마음을 흔든 이들의 증언 덕분에 결국 같은 해 7월 30일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와 역사 교과서에 기록을 요청하는 내용의 ‘HR121’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다.

김복동은 위안부 문제를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시 여성 폭력 문제로 넓혀 접근했다. 그는 1992년 1월 17일 ‘정신대 신고전화’에 직접 전화를 걸어 처음 ‘위안부’ 피해의 진상을 증언했다. 이대로 있다간 ‘위안부’ 문제가 그대로 묻혀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로부터 27년 간 그는 ‘위안부’ 진상과 책임 규명을 위해 헌신했다.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로선 처음으로 파견돼 증언한 것을 비롯해 김복동 할머니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해 생존자의 목소리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렸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길원옥 할머니와 ‘나비기금’을 발족하고, ‘김복동 평화운동상’을 제정해 여성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후배 여성들을 물심양면 도왔다. 2014년에는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지원 메시지를 보냈다. 재일 조선 고등학생 2명에게 김복동 장학금을 전달하고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첫 정부 기념식에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할머니들의 당당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 이어져 이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다”며 기림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할머니들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승화시켜 이 순간에도 인권과 평화를 실천하고 계신다”며 “진실을 외면한 역사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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