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군부독재하 시작된 태국 학생 두발규제
정부 방침 완화에도 달라지지 않는 학교에
“학생 기본권 침해·젠더 차별” 반발 계속
화난 태국 10대들, 시위·토론·소송 이어가

태국 남교사가 여학생의 머리 길이가 규정 위반이라며 반항하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는 모습. 지난 6월 27일, 태국의 청소년인권활동가 벤자마폰 니와스가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은 5만 번 넘게 리트윗되며 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트위터 캡처
태국 남교사가 여학생의 머리 길이가 규정 위반이라며 반항하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는 모습. 지난 6월 27일, 태국의 청소년인권활동가 벤자마폰 니와스가 트위터에 올린 이 사진은 5만 번 넘게 리트윗되며 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트위터 캡처

 

지난달 27일, 태국의 청소년인권활동가 벤자마폰 니와스(15)는 트위터에 남교사가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는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여학생은 두 손은 뒤로 묶이고, 입은 덕테이프로 막힌 채 의자에 앉아 있다. 목에는 “이 학생은 머리 길이 규정을 어겨 처벌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팻말이 걸렸다. 바로 니와스 자신이 겪은 일이었다. “억압적 두발 규제를 중단하라”라는 니와스의 트윗은 한 달 만에 5만 번 넘게 리트윗돼 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니와스는 태국 학생단체 ‘나쁜 학생들’의 공동창립자이자, 엄격한 학생 두발 규제에 반대해 행동해온 태국의 10대들 중 하나다. 지난 10년간 태국 10대들은 학생 두발 제한 규정이 군부독재의 비민주적·억압적 유산이며, 젠더 차별적이므로 철폐하라고 정부에 요구해왔다.

지난 10년간 태국 10대들은 학생 두발 제한 규정이 군부독재의 비민주적·억압적 유산이며, 젠더 차별적이므로 철폐하라고 정부에 요구해왔다. ⓒTHAI PBS NEWS 영상 캡처
두발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머리를 아무렇게나 깎인 태국 남학생들. ⓒ2020년 7월 10일 THAI PBS NEWS 영상 캡처

여학생은 ‘바가지머리’에 가까운 단발머리, 남학생은 ‘군인 반삭머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 태국의 학생 두발 규정은 1970년대 초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처음 전국 학교에 적용됐다. 교사들이 규정을 위반한 학생의 머리를 가위나 이발기로 자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고 한다.

태국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은 두발 규제에 반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태국 정부도 지난 10년간 관련 규제를 몇 번 완화했다. 올해 3월 ‘학생 두발규제 철폐를 위한 청소년 연합’ 등 태국 학생단체들은 두발 규제가 “학생 자율권 침해” “태국 교육 발전을 저해”한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두 달 후인 5월 태국 정부는 학생들이 머리를 기르고 펌이나 염색을 해도 되며, 남학생은 수염을 길러도 된다고 발표했다. 단 여학생은 머리를 묶어야 하고, 남학생은 옆이나 뒤에서 볼 때 머리가 목보다 더 내려오면 안 된다는 등 제한을 뒀다.

태국 정부의 공식 학생 두발 규정이 수십년 전보다 완화됐다지만, 이를 따를지는 각급 교사의 판단에 맡겨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발표 후 몇몇 학생단체는 교육부 앞에서 ‘학교 현장은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며 더 강력한 대책을 주문하는 시위를 했다.

최근까지도 니와스의 사례처럼 교사가 ‘두발규정 위반’이라며 학생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는 현실이 공론화되자, 태국 교육부는 지난 10일 모든 학교에 학생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 3월 태국 학생단체들은 ‘이제 우리 머리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올 시간’이라는 주제로 페이스북 라이브 토론을 벌였다. ⓒThai Lawyers for Human Rights
지난 3월 25일, 태국 학생인권활동가들은 ‘이제 우리 머리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올 시간’이라는 주제로 페이스북 라이브 토론을 벌였다. ⓒThai Lawyers for Human Rights

최근에는 두발 규제가 10대들의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억압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긴 머리나 펌·염색 머리는 허용해도 ‘여학생’이 ‘숏컷’을 하거나 ‘남학생’이 긴 머리를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것은 젠더 차별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9일, 태국 중고생·청소년활동가 약 12명은 “우리는 다양한 젠더에 맞는 학교를 원한다” “시대에 뒤처진 두발규제 반대”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 무지개 깃발을 들고 태국 교육부로 행진했다. 시위를 주최한 파누퐁 수와나홍(19)은 “다양한 젠더의 학생들도 생각해달라. 교육부는 ‘다양성은 정상’임을 고려하라”고 말했다. 시위에 참여한 핌차녹 농누알은 “젠더 플루이드나 논바이너리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해달라”며 두발 규정에 반대하는 의미로 교육부 건물과 관료들 앞에서 자신의 단발머리를 삭발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태국에서는 학생단체를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속 지난 3월부터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자, 현 집권세력인 군사정권이 감염병을 핑계로 과도한 행정력을 행사하며 시민들의 기본권을 억압하려 한다는 우려가 커지며 곳곳에서 각종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학생 두발 규제 철폐 시위에 나선 학생단체들은 이러한 반정부 시위대와는 연관이 없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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