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여가위 통폐합 추진
여가부는 뒷북 조처 일관
‘페미니스트’ 자처한
문 대통령은 묵묵부답

대형 이슈가 연이어 터지는데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보이지 않는다. 침묵하다가 뒷북 조처로 비판받기 일쑤다. 국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당은 여성가족위원회를 “효율성”을 이유로 통·폐합하려다 여성들의 반대에 부딪쳐 한발 물러섰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광역단체장 성폭력 고발 사건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정부와 국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정작 당·정·청은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임명장 수여식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임명장 수여식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 여가위를 통·폐합 하겠다고 발표했다가여성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여당 출신 광역단체장이 잇달아 성폭력 문제로 사퇴한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176인 전원이 여성가족위 통·폐합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겸임 상임위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여가위는 오랫동안 단독 상임위 격상 또는 통·폐합 안을 두고 여러 의견이 부딪치는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은 제대로 논의도 거치지 않고 통폐합을 추진하려 해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여성계 한 인사는 “공론화하지 않고 단독으로 통폐합을 추진한 절차의 문제와 함께 통폐합을 찬성한 여성의원들이 국회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묻고 싶다”며 “만약 반대 했다면 왜 그 의견은 힘을 받지 못한 것인지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던 문 대통령은 박 전 시장 사건이 벌어진 지 2주가 넘도록 침묵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이 “피해자를 위로한다”는 입장을 냈다가 그날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뒤로 물러서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진상규명 결과가 나와야만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것이 원론적인 입장만 발표했을 뿐이다. 미국 CNN도 ‘(문재인) 대통령이 비판에 직면했다(The president comes under fire)’는 제목의 기사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문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여가부에 대한 비판이 더 강력하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은 게시 나흘 만에 소관 위원회에 회부되는 최소 조건인 1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곧바로 ‘여성가족부의 존속 및 권한 강화에 관한 청원’이 게시됐으나 일주일이 지난 7월29일 현재 1만1300여명의 동의를 얻는데 그쳤다.

여가부는 2001년 출범 이후 줄곧 폐지 청원에 시달려야 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발) 현상도 20년간 지속돼왔다. 그러나 동시에 여가부가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사이 정작 정책 대상이자 강력하던 아군이던 여성들까지 등돌리게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중요한 사건 때마다 침묵하거나 뒷북 조처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여성가족부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가부가 가치 지향적인 일상에서 해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지금처럼 청명 감을 가지고 해나가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홍수형 기자

여가부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건 발생 2주나 지나 서울시청에 대한 현장점검에 나섰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여가부가 점검 후 성폭력 사건 은폐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고 밝히지만, 이는 조사권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나 수사기관의 은폐사실 적발 후에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여가부 현장점검에 대한 실질적 효력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가부의 모호한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초 박 전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피해자를 ‘피해 고소인’으로 불렀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피해자’로 통일했다.

정부 전체 예산의 0.2% 수준인 적은 예산과 인력은 여가부의 고질적인 문제다. ‘미니 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권한이 작아 그만큼 한계도 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가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7년 정현백 전 장관이 젠더 의식 논란을 빚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당시 행정관)의 경질을 청와대에 건의했다가 “그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좀 무력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때는 여가부가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가 여가부 대변인이 경위서를 썼다는 말까지 나온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권수현 대표는 “조직의 규모나 예산에 대한 한계는 매번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로써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인적·공적 자원을 여가부가 그동안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우리는 지금의 여가부 장관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어떤 정책을 펼치고자 하는지에 대해 모른다. 앞서 정권의 입맛에 다른 행동을 했던 누군가의 끝을 보고 침묵을 지키기기로 한 것 아닌가”라며 “여가부는 정책 대상을 상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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