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민주당 정치인들이 룸가라오케에서 여성접대부 대동해 술 마셔 논란된 '새천년 NHK 사건'
20년 지나 논란의 당사자였던 386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은 그대로
집권 4년차, 180석 여당의 민주주의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야, 이-X-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벌써 20년 전 일이다. 386 정치인들이 룸가라오케에서 여성 접대부를 대동해 술판을 벌여 논란이 된 ‘새천년 NHK’ 사건 말이다.

1999년 한국 사회에는 변화를 갈망하는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97년 외환위기로 시작된 ‘IMF’가 안겨준 불안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이 맛본 정치적 효능감, 20세기가 마감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한다는 설렘이 뒤엉켜 정치, 경제, 사회 등 한국의 전 부문이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정치권은 그런 국민의 바람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국민회의’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천년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차지한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정치권에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며,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을 제도 정치권으로 영입한다. 전대협 1기 의장 이인영, 1기 부의장 우상호, 2기 의장 오영식, 3기 의장 임종석이 대표적이다.

많은 이들이 ‘젊은 피 수혈’ 방안에 동의했다. 특히 16대 총선을 앞두고 낙선운동을 위해 박원순 등이 조직한 ‘총선연대’에서는 386들이 이전 정치인들보다 높은 정치의식과 도덕성을 갖고 있다는 게 보편적인 평이었다. 결국 16대 총선 이후 386 세대의 주축들은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 그때부터 386은 새천년민주당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력화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집단 중 하나였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016년 10월 19일 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의에서 송영길 의원, 우상호 원내대표와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중앙위원회를 열고 민주당과 당 통합 안건을 정식 의결, 법적으로 양당간의 통합이 마무리 했다. ⓒ뉴시스·여성신문

386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기대를 배신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로 충분했다. 2000년 5월 17일, 민주당 386 정치인들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행사를 마친 뒤 그들은 ‘새천년 NHK’라는 룸가라오케에서 여성 접대부를 대동하여 술자리를 연다. 이는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이 '5월17일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글을 쓰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임수경 전 의원에 따르면 본인은 술자리의 정체를 모르고 선배들에게 인사하고자 방에 들어갔다가 해당 광경을 목격했고, 우상호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야, 이-X-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라는 폭언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36세의 김민석, 37세의 송영길, 38세의 우상호, 38세의 김성호, 37세의 장성민. 그들은 사건 당일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의 유일한 손님이었다고 한다. 광주 사람들은, 아니 광주 사람이 아니라도 ‘5월 광주’를 기억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은 그날만은 보통의 날과 다르게 하루를 보내려고 마음을 다잡곤 하기 때문이다.

임수경 전 의원의 폭로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사실이 과장됐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모습은 구태로 찍혀 낙선운동의 대상이었던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다. 새로운 세기의 한국을 이끌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들이 시정잡배와 다를바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된 당사자들은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다. 외국산이 아닌 국산양주 4-5병을 마셨다는 점, ‘당시 방에는 마담 1명과 심부름하는 여자 2명이 있었'을 뿐이라는 점과 이어진 ‘광주를 방문했던 젊은 의원 일동’ 이름의 대국민 사과 이후 당내는 물론이고,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이 날의 일은 해프닝으로 취급되었다. 오히려 일을 외부로 알린 임수경 전 의원이 비난의 대상이 됐고, 오랜 시간 고난을 겪었다.

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0.03.25. <br>
 n번방 '박사'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 2020.03.25. ⓒ뉴시스·여성신문

새천년도 이제 20년 지났다. 그새 386정치인들은 586정치인이 되었고, 거대 여당의 핵심 권력을 손에 쥐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에 접어들고,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 카드를 사용해 무려 180석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화세력' 민주당에게 몇 점을 주고 싶은가?

2018년 혜화역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대통령 재기해(죽어라)”라는 구호를 썼다고 김어준 정치평론가에게 반인륜 집단으로 묘사되며 공격당했다. 불법 촬영물, 디지털 성폭력 피해 증가에도 뚜렷한 대책은 아직도 미진하고, 아동 성착취 영상물로 수십억의 수익을 번 손정우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임신중지 합법화에 이어 여성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입법, 비동의간음죄, 스토킹처벌법은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

여성 비하로 논란이 되었던 탁현민 행정관은 16개월 만에 대통령 의전 및 각종 행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승진 임명되었다. 충남도지사 안희정, 부산시장 오거돈은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고, 서울시장 박원순은 성폭력 의혹에 휩싸였다. 박원순 사건에 입장을 밝히라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요청에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도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박원순 사건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가 4시간 만에 번복했다. 민주당 대권주자들은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얼마 안되 민주당 표 서울시장 후보를 내야한다며 입씨름했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민주당이 그나마 역할을 해오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는 거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 외 8단체가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 노동자에게 평등을' 연대행진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 외 8단체가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 노동자에게 평등을' 연대행진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지금 민주당 내에서 잇다른 성폭력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도, 국민을 향한 송구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쯤되면 문재인 정부, 민주당 자체가 성적폐 아닌가.
민주화에 기여하고 집권세력이 된 386 세대 민주당 정치인들,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그들끼리의 민주주의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시인 김남주는 이렇게 노래했다.

“ …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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