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대신 ‘성착취물’… 달라지는 경찰, 성평등의 힘
‘음란물’ 대신 ‘성착취물’… 달라지는 경찰, 성평등의 힘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0.07.31 16:42
  • 수정 2020-07-31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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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성은 경찰청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중앙행정기관 첫 성평등 전담부서
기본계획 수립·전담인력 배치
시민·경찰·전문가 ‘시너지’ 덕
25일 오후 서울 중구 바비엥3차에서 이성은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은 "올해 목표는 경찰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성 평등 대한민국이다. 경찰청의 18개의 국 관에서 각 기능이 스스로 성 평등 목표를 만들고 기본 교육에서도 수립하는 것이다"며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성은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  ⓒ홍수형 기자

 

여성 경찰관을 상징하는 ‘포순이’가 21년 만에 달라졌다. 단발머리에 치마를 입고 속눈썹이 길었던 포순이는 이제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머리는 귀 뒤로 넘겼다. 긴 속눈썹도 없앴다.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편견을 없애기 위한 조처다. 경찰이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에도 ‘음란물’ 대신 ‘성착취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작은 변화는 경찰 내 성인지평등의 방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경찰청은 지난 2018년 3월 중앙행정기관 최초로 성평등정책 전담부서로 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했다. 이듬해 5월 정식 직제화해 2년 넘게 경찰청의 성평등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경찰청은 전체 양성평등 전담부서 8곳 가운데 모범 사례로 꼽힌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성평등위원회’와 정책·이슈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젠더거버넌스가 활성화돼 있고 성평등지표 개발과 성평등정책 5개년 기본계획 수립도 마쳤다. 23개 지방경찰청·부속기관에 양성평등정책 전담인력을 배치해 정책이 일선 현장에서도 시행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부서를 이끄는 이성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서기관)은 “아직 부족하지만 모범 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시민과 경찰, 전문가 3자 구도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서에서 정책을 만들면 성평등위원회가 실질적인 이행·점검을 통해 정책에 힘을 실어줬고, 담당관실 소속 경찰들은 동료들의 눈높이에 맞춰 정책을 알리고 설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경찰의 변화에 시민들도 많은 호응을 해주셨어요. 시민과 경찰, 전문가 이 삼자가 조화를 이뤄 조금씩 성과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이 담당관은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석사를, 영국 요크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거치며 연구와 정책, 현장을 두루 거친 이 분야 전문가다.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부처 내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는 성주류화 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조직 내 성차별 구조를 개선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담당관은 지난 2년간 가장 큰 성과로 “일선 경찰들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경찰은 국민이 만나는 첫 번째 공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대 파출소, 교통 경찰 등 시민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공권력인 경찰의 성평등 의식은 그래서 매우 중요해요. 경찰이 성평등한 관점에서 대국민 서비스를 수행하려면 성평등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직 내 성평등이 한 변화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이롭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수인 남성 경찰이 동의하지 않으면 경찰 조직이 변화하기는 쉽지 않아요. 남성이 경험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성평등정책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최근 간담회에서는 남성 경찰들도 눈치보지 않고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정책이 개인과 조직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해야 뿌리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바비엥3차에서 이성은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은 "올해 목표는 경찰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성 평등 대한민국이다. 경찰청의 18개의 국 관에서 각 기능이 스스로 성 평등 목표를 만들고 기본 교육에서도 수립하는 것이다"며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성은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 ⓒ홍수형 기자

성평등정책이 안착하기 위해 인력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이 담당관은 “본청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만으로 는 전국 조직인 경찰을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다”며 “정책 추진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23명 지방청 및 소속기관의 양성평등정책 전담인력이 좀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평등정책 추진에 리더의 의지도 중요 요소로 작동한다. 전임 민갑룡 청장은 제1호 치안정책으로 여성대상 범죄 척결을 내걸고 여성안전기획관(경무관급)을 신설했고, “경찰 지휘부부터 성평등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며 조직 내 성평등을 강조했다.

신임 김창룡 청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김 청장은 2018년 ‘혜화역 집회’ 당시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치안감)으로 근무하며 여성 대상 범죄와 성차별 문제에 대한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하기도 했다. 김 청장은 취임 후 “여성과 아동, 어르신 등 범죄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 마련에 힘쓰고, “경찰 조직 업무 전반을 인권 친화적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담당관실은 지난해 경찰청 자체 훈령과 예규에 있는 성차별적인 요소를 점검해 61개의 훈령과 예규를 성평등 관점으로 개정했다. 포순이 캐릭터도 이 개정을 통해 성평등한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다. 이 담당관은 앞으로 본청의 각 기능별로 성평등 목표를 세우고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경찰정책 성주류화 실행이 앞으로의 주요 추진 과제로 밝혔다.

“젠더폭력 수사만 성인지관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보이스피싱 수사를 할 때도 교통경찰이 단속을 할 때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성인지관점이 필요합니다. 올해 수립한 2020-2024 경찰청 기본계획에 기초해서 본청의 각 국관별로 업무 특성에 맞게 성평등 목표를 수립하고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야 실질적인 성주류화도 이뤄질 수 있지요. 최근 성평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여성단체 대표께서 ‘경찰이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됐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경찰이 피해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경찰 스스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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