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인권의식 높아졌는데 체육계 변화는 더뎌
고 최숙현 선수가 남긴 과제
가해자·체육계 영향력 벗어난
독립적·전문적 피해지원기구 필요
가해자 엄벌 넘어 스포츠 개혁 시급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는 "엘리트 선수를 잘 육성하고 발굴하기 위해서도 스포츠포올(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전환 되어야 하고 거기에 맞게 정책과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는 “고 최숙현 선수가 우리에게 재난 경보를 울렸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스물둘에 삶을 마감한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 지도자와 선수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6월 26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그는 여러 곳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경주시, 경주경찰서,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국가인권위원회,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모두 최 선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성적지상주의를 앞세워 폭력을 방관해온 체육계의 현실과, 작동하지 않는 피해 구제 시스템이, 또다시 누군가가 죽고야 드러났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스포츠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모였다. 지난 20일 출범 기자회견을 연 ‘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다.

28일 만난 문경란 공대위 상임공동대표는 “최 선수가 우리에게 재난 경보를 울렸다”고 했다. “이제 사람들은 참지 않아요. 인권을 침해당하면 신고를 하죠. 그런데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성적을 핑계로 폭력을 저지르고, 신고해도 바뀌는 게 없다면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지 않겠어요? 제2, 제3의 최숙현이 또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이런 일이 계속될까 두렵습니다.”

- 2000년대부터 많은 스포츠 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정부와 체육계가 매번 대책을 내놨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가해자 개개인도 문제지만, 한국 엘리트 스포츠 현장에 폭력이 횡행하고 있어요. 매번 ‘불량품’을 찾아내어 버리면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걸 넘어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나 구조를 살펴봐야죠. 스포츠 개혁이 시급합니다. ‘메달을 위해서라면 인권은 유보될 수 있다’는 성적지상주의·엘리트 중심 시스템을 벗어나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가야 합니다. 그게 최 선수가 우리에게 던진 과제입니다.”

가해자·체육계 영향력 벗어난
독립적·전문적 피해지원기구 필요
가해자 엄벌 넘어 스포츠 개혁 시급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연 ‘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연 ‘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뉴시스·여성신문

문 대표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혁신위)를 이끌었다. 지난해 스포츠 ‘미투(#MeToo)’ 고발이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엄벌, 스포츠 성적지상주의 전면 재검토 등을 주문했다. 이어 문체부 주도로 발족한 혁신위는 1년간 총 7차례 권고안을 발표하고 올 1월 활동을 마쳤다.

- 혁신위는 “강력한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체계를 구축”하라고 문체부 등에 권고했고, 다음 달 ‘스포츠윤리센터’가 문을 엽니다. 과연 권고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오는데요.

“스포츠윤리센터의 핵심은 독립성·전문성·신뢰성입니다. 기존 체육계의 피해 신고·지원체계와는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가해자나 관계자들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가 있지만, 선수들은 ‘거기 알리면 보호받지 못한다, 가해자에게 신고 사실을 귀띔하고, 피해자에게 운동 안할거냐고 협박한다, 운동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만 신고할 수 있는 걸 다 아는데 왜 신고하겠냐’고 하거든요. 체육단체나 연맹은 적어도 스포츠 인권침해 사건 조사나 징계에선 손을 떼고, 스포츠윤리센터나 인권위로 사건을 보내도록 해야 합니다. 조사 결과가 유출되지 않도록 바로 문체부 장관에 보고하면, 장관이 관련 단체장에게 강력한 징계를 권고하고요.

접근성도 중요해요. 누구나 쉽게 센터를 찾을 수 있어야죠. 전문 상담원이 365일 온·오프라인 신고를 접수하고요. 그래도 본인이 직접 신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제도처럼, 주변인이 스포츠폭력 피해를 발견하거나 의심하면 대신 신고하게 의무화하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본래 혁신위는 ‘스포츠 인권 관련 사건 전담 플랫폼’을 만들라고 권고했습니다. 전국의 사건을 취합해 데이터베이스도 만들고, 인권위, 경찰과 아동보호기관, 해바라기센터 등 여러 지원단체를 연계하는 허브 역할을 기대했죠. 그런데 실제 스포츠윤리센터 구성을 보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전문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인권침해에 반부패·불공정 사건까지 조사한다는데 총원 고작 25명, 피해 조사·지원 실무자는 10여 명, 특히 상담사는 3명뿐입니다. 인력을 충원한다니 지켜봐야겠지만요. 원래 명칭인 ‘스포츠인권윤리센터’에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는 ‘인권’이 빠진 것도 아쉽습니다.”

- 혁신위는 피해자 보호·지원방안 외에도 학교 체육 정상화, 스포츠 인권 강화, 스포츠기본법 제정 등을 권고했지만,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체육계가 반발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혁신위 권고안 이행에 소극적이었고,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관리감독에 소홀해, 결국 둘 다 최 선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2018년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 사건 등을 계기로 이미 여러 문제제기와 대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러 현안들과 정쟁 속에서 스포츠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어요. 정부, 대한체육회, 국회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죠. 체육계에서 반발했지만 그게 ‘강력’한 저항이었는지 의문입니다. 대한체육회로 대표되는, 기득권 엘리트 중심의 몇몇 단체들의 입장이 과대대표됐다고 봐요. 지지 의사를 밝힌 체육인들, 목소리를 내지 못한 많은 선수들 의견이 얼마나 대변됐는지도 생각해봐야죠. 정부가 주춤하지 않고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면, 스포츠 현장의 많은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이어보기▶ ② 국가대표 못 돼도, 메달 못 따도 삶의 가능성 열려야 http://www.womennews.co.kr/news/20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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