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경의 미얀마 이야기]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은 여행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표현이다.
오랜 여행작가 생활을 하면서 필자는 여행이란 '음식 절반, 관광 절반'이라는 나름의 여행 철학을 정립하게 됐다.
불과 4~5일 정도의 짧은 여행을 하면서 라면, 김치, 고추장 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거나, 몇 시간 비행기를 탄 후 내리면서 한식당부터 찾는 사람을 보면 같이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린다.
해외여행의 주요한 목표가 현지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일인데, 비싼 돈 들여 해외여행 하면서 스스로 그 즐거움의 절반을 포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얀마는 가난한 나라이며, 먹을 게 별로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틀린 생각이다.
미얀마는 역사가 깊고,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국토가 광활하고, 농·수·축산물이 풍부한 나라여서 음식 문화도 매우 발달돼 있다.
무엇보다 태국이나 인디아 처럼 향신료 냄새가 강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식재료나 조리 방법이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동남아 국가들 가운데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미얀마는 쌀생산이 세계 2위인 나라이다 보니 당연히 쌀이 주식이다. 특히 미얀마인들은 쌀국수를 많이 먹는다. 그 가운데 미얀마 어디를 가도 공통적으로 맛볼 수 있는, 미얀마를 대표하는 세 가지 국수가 있다. 바로 ‘모힝가’(Mohinga)와 '샨 국수'(Shan noodle), 그리고 ‘쩨오’(Kyay-oh) 이다.

미얀마에서 가장 보편적인 쌀국수는 '모힝가'(Mohinga)이다. 세계적인 디지털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Wikidipia)를 찾아 보면 모힝가를 '미얀마의 국민음식'(National Dish of Myanmar)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음식이 바로 모힝가인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모힝가 ©조용경
전통적인 방식의 모힝가 ©조용경

 

모힝가는 미얀마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에야와디 강에서 무궁무진하게 잡히는 메기를 주원료로 만드는 쌀국수이다.

에야와디 강에서 잡은 메기들 ©조용경
에야와디 강에서 잡은 메기들 ©조용경

 

모힝가를 만드는 데 가장 핵심은 육수를 만드는 과정이다.

먼저 메기를 서너 도막으로 자르고 물을 조금 넣은 솥에서 충분히 익힌 다음 살 만을 따로 발라내서, 양파와, 불린 콩, 마늘, 생강, 월계수 잎과 갖은 양념을 함께 넣고 다시 몇 시간 동안 걸쭉하게 끓여 낸다.

그리고는 모팟이라고 부르는, 가늘고 둥근 쌀국수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육수를 부은 다음, 삶은 오리알이나 계란 반쪽 정도를 얹고, 바삭하게 튀긴 병아리콩(chickpea) 튀김과 샹차이(고수)로 고명을 해서 내 놓는 것이 전형적인 모힝가이다.

메추리알과 양파, 마늘이 듬뿍 들어간 모힝가 육수 ©조용경
메추리알과 양파, 마늘이 듬뿍 들어간 모힝가 육수 ©조용경

 

어디를 가든 모힝가를 파는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대도시에서는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모힝가를 파는 노점상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양곤 공항 로비에서 아침에 파는 모힝가 ©조용경
양곤 공항 로비에서 아침에 파는 모힝가 ©조용경

어지간한 식당, 그리고 특급호텔의 조찬 뷔페식당에도 모힝가가 빠지는 경우는 없을 정도이니, 모힝가를 ‘미얀마의 국민국수’라고 부르는 것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양곤의 차이나타운 인근 노점상에서 파는 모힝가 ©조용경
양곤의 차이나타운 인근 노점상에서 파는 모힝가 ©조용경

필자는 길거리 노점상에서부터 특급호텔의 뷔페식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모힝가를 먹어보았는데, 특히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이 모힝가일 듯 하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메기탕이나 진배없는 얼큰한 모힝가 한 그릇을 들이키고 나면 어지간한 숙취는 금세 가셔버리기 때문이다. 

모힝가를 국민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누구나 쉽게 사먹을 수 있을 만큼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모힝가와 유사한 것이 동부의 샨(Shan) 주에서 유래된 샨국수(Shan noodle) 이다. 샨 주는 중국 남부와 인접한 고원지대여서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하며, 물산도 풍부해서 예로부터 미얀마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지역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그러다 보니 일찍부터 음식 문화가 발전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샨 국수 ©조용경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샨 국수 ©조용경

 

샨 국수는 육수에 말아서 나오는 국수와 샐러드 비슷하게 비벼서 먹는 국수가 있는데, 육수에 만 국수는 '예세인'(yay sein)이라는 찰기가 없는 가늘고 둥근 국수이며, 비빔국수는 '산시'(san see)라는, 면이 넓고 얇으며 찰진 국수이다.

양곤 중심가의 샨 국수 전문점 ©조용경  
양곤 중심가의 샨 국수 전문점 ©조용경  

 

 샨 국수는 쌀 국수와 함께 돼지고기, 닭고기가 많이 들어가며 지역별로 다양한 야채와 고추, 마늘, 참깨 등이 많이 들어가고, 말린새우를 우려낸 육수에 커리 가루를 넣는 게 오리지날에 가까운 듯 하다.

태국의 치앙마이에 가면 커리국물에 말아주는 이 지역 특유의 국수를 '카오소이'라고 하는데, 산 주에서는 샨 국수를 '카오 스웨'(Khao swe)라고 부른다니 뭔가 유사점이 느껴지지 않는가?

샨 국수는 지역에 따라 재료나 만드는 방식이 무척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맛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샨 국수는 샨 주에서 유래되었지만, 지금은 모힝가 못지 않게 미얀마의 전국구 음식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쩨오(Kyay Oh) 역시 미얀마 사람들이 즐기는 쌀국수로서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모힝가와 달리 비교적 근세에 중국에서 전래된 국수이다.

돼지 내장이 듬뿍 들어간 국수, 쩨오 ©조용경  
돼지 내장이 듬뿍 들어간 국수, 쩨오 ©조용경  

 

쩨오란 명칭은 국수를 담는 구리로 만든 뚝배기(쩨오)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는 실국수나, 혹은 얇고 납작한 쌀 국수에 돼지고기나 생선을 고아낸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식성에 따라 돼지고기 닭고기 혹은 생선으로 만든 미트볼을 얹은 다음, 볶은 마늘가루, 생강 등을 넣어서 먹는다.

쩨오는 근래에 들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하는 데, 양곤을 중심으로 번성하고 있는 YKKO(Yan Kin Kyay Oh) 라는 쩨오 전문 식당은 늘 젊은이들로 붐빈다

양곤 시내에 있는 YKKO 제1호점 ©조용경
양곤 시내에 있는 YKKO 제1호점 ©조용경

 그러나 서민 음식인 모힝가에 비해 값은 좀 비싼 편이어서 YKKO의 경우 2,500~3,000 쨧를 받고 있는데, 미얀마 청년들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도 깨끗하고, 에어컨 시설이 완비돼 있으며 무엇보다 와이파이(Wi-Fi)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단기간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떠올랐다. 선호하는 음식도 시대상과 함께 달라진다는 실증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세 가지 국수를 소개하다 보니 한국 사람은 안먹으면 못사는 밥 소개도 하나쯤 해야 할 것 같다. 

미얀마 역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이며, 그 사람들 역시 밥을 해 먹는다. 미얀마에서 많이 생산되는 쌀은 찰기가 없고, 조금 길쭉한 이른바 안남미이다. 6.25 이후 수 년 동안 미얀마가 우리에게 원조를 해주었던 바로 그 쌀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그 쌀을 가지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볶음밥(따민 쪼, tamin kyaw)을 만들어 먹는다. 음식에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어느 식당에서든 편하게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이 볶음밥이 아닌가 싶다.

양곤의 유명 음식점에서 먹은 볶음밥  ©조용경
양곤의 유명 음식점에서 먹은 볶음밥  ©조용경

 

양곤 변두리의 작은 식당에서 볶음밥 만드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작은 식당 주인은 적당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땅콩기름을 붓고 노란색의 강황(tumeric) 가루를 넣어서 잘 섞은 다음 찬밥을 넣고 주걱으로 으깨가며 볶았다. 그리고는 삶은 완두콩, 다진 양파와 고추, 마늘, 그리고 고객의 주문대로 미리 익혀놓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혹은 새우 등의 해물을 넣고, 간을 맞추기 위해 말린 새우가루를 뿌려가며 다시 적당히 볶는다(그 식당에서는 간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찬밥을 사용하는 이유는 수분이 증발해서 밥알들이 서로 붙지 않기 때문에 밥알에 기름이 충분히 묻어서 볶음밥 특유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접시에 볶음밥을 담은 후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가져다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우 간단한 요리지만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다. 고수만 빼면 우리나라의 볶음밥과도 매우 비슷한 음식이다. 이런 식으로 볶음밥과 여러 가지 국수, 혹은 미얀마식 정식을 적당히 바꿔 가면서 먹으면 한 달을 있어도 음식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사는 미얀마 사람들이 외식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우리네 가정의 식사처럼 집에서 밥을 짓고, 몇 가지 반찬을 만들거나 사다가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가깝게 지내는 어느 미얀마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대접 받은 상차림도 소개를 해 본다.

지인의 집에서 대접 받은 상차림 ©조용경
지인의 집에서 대접 받은 상차림. ©조용경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미얀마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결코 빠져서는 안되는 동반자가 있다. 바로 미얀마 맥주(Myanmar Beer)이다. 몇 가지 되지 않는 미얀마의 공산품 가운데 품질 면에서 세계적으로 톱클라스에 올라서 있는 게 미얀마 맥주가 아닌가 싶다. 미얀마 맥주가 좋다는 건 결코 필자의 느낌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국영기업인 'MYANMAR BREWERY LTD'가 생산하는 ‘미얀마 맥주’는 '벨기에'에서 개최되는 Monde election맥주품평회에서 1999년에서 2001년까지, 그리고 2004년에서 2006년 까지 여섯 차례나 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또 2005년과 2006년 가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세계 맥주축제 에서도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미얀마 맥주와 꼬치요리 ©조용경
미얀마 맥주와 꼬치요리 ©조용경

 

저녁 시간에 아무 식당에서든 안주 하나 시켜서 미얀마 맥주 한 병 마시고, 모힝가나 샨 국수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면 그보다 더 멋진 식사는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미얀마는 음식 때문에 여행을 꺼려야 할 나라는 절대로 아니라는 게 필자가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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