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처절하게 말하고 싶다. 10대의 삶에 관해 연구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작업할 때 자주 드는 감정이다. 종종 청소년들과 나는 ‘이 사회는 얼마나 10대를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가’를 말하는데 골몰했다. 그동안 묵혀왔던 소외와 고통을 증언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절절하게 힘들다는 것을 말하면 혹시나 알아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10대의 불안과 불만을 바탕으로 한 연구에 대해 어떤 반응을 기대하냐고 물었을 때 많은 공감을 얻은 말은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였다.

하지만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은 때로 합리적인 질문으로 고꾸라졌다. “정말 모를까?” 이 사회의 어른들은 청소년의 고통에 대해 정보의 측면에서 무지한가? 2019년 UN은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검토하고, 차별금지, 아동의 자살 예방을 비롯한 생명·생존·발달권, 체벌 등의 폭력, 그루밍 성폭력 등을 포함한 성적 학대, 학업 성취에 기반한 차별을 포함한 교육 접근, 그리고 소년사법의 분야에서 시급한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청소년의 생존과 성장, 존엄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인가? 유·소아를 비롯해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가 이들의 인권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가? 청소년들이 목표 최적화된 시간표에 맞춰 도구 취급되는 것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한때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있다. 적게는 5kg부터 많게는 12kg까지 나가는 가방의 무게로 청소년들의 괴로움을 재치있게 토로하는 영상이다. 경쾌한 톤이지만, 이 영상을 수업 시간에 틀었을 때는 분위기가 무거웠다. 100명이 넘는 대강의였는데, 학생들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대학에 왔지만, 여전히 몸이 기억하는 고통 때문인 듯했다.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말하길, 10대 여성들로 구성된 제작진은 주변 친구들을 위로하고 주변의 공감을 바라며 해당 영상을 만들었는데, 기대와 다른 반응이 있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너만 힘든 줄 알아?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였다. 청소년들의 고통은 주로 저 한 줄로 입막음 된다. 이 말은 10대를 연구하는 청소년들도 흔하게 듣는 말로, 대체로 두 가지 결론을 가져왔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다. 청소년들은 ‘이렇게 힘든데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반문하며,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또 하나는 이해받을 가능성 없음. 즉, ‘다 알아도 저러는구나’이다. 가방이 무거운 것을 알아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고통을 말해도 듣지 않는다.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침묵으로 무력감에 빠지거나, 힘으로 보복하는 전쟁을 대비한다. ‘다 알면서도 그런다’는 결론이 나고 나면, 대화라는 공존의 의지가 사라진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청소년들은 입을 닫고, 힘의 논리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 세상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마음이 부서지기 전, 당연시되어온 고통에 귀기울여야 한다. 삶을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다 알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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