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성범죄 무죄판결 비율 20%
일반 재판의 20배 수준

청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왕기춘 올림픽 전 국가대표가 26일 오전 재판을 받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청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왕기춘 올림픽 전 국가대표가 26일 오전 재판을 받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미성년 제자를 그루밍 해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 유도 국가대표 선수 왕기춘이 신청한 국민참여 재판이 기각됐다. 미성년자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되서다.

대구지법 형사12부(이진관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했지만 이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왕씨 측은 지난달 26일 첫 재판에서 “국민의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재판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측은 “지역민들로 구성될 배심원들 앞에서 피해자가 나와 진술할 경우 성적수치심이 유발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피해자 측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된다”며 참여재판에 반대했다.

우리 사회의 법 감정이 성범죄에 대한 엄벌주의로 향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참여 재판은 솜방망이 처분이 나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과 법무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12년간 국민참여재판의 평균 무죄율은 10.9%에 달한다. 일반 재판 사건 무죄율은 1~3%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의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20.1%로 일반 사건의 2배에 달하며 법관의 판결과 일치하지 않는 비율도 10%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배심원들이 법관보다 피해자의 순수성에 대해 주목하면서 반항의 유무, 성폭력 전후 상황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 배심원단 앞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로 피해자들이 구체적 진술을 포기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부 성범죄 피의자들이 그루밍 성폭력이나 데이트 성폭력 등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하는 사례까 늘고 있다. 2018년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145건 중 53건의 배제 사유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을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도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진행돼 논란이 일기도 한다. 앞서 남성이 준 술을 마시고서 신발도 못 신을 정도로 취한 여성을 남성과 그의 친구들이 1시간여 거리의 숙박업소로 끌고 가 성폭행한 사건이 피해자의 불원에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사례가 있다. 해당 사건은 피해자가 홍대 클럽에서 남성이 준 술을 받아마신 점 등을 토대로 성관계에 암묵적 동의를 한 것으로 간주돼 배심원단과 재판부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왕씨가 아동 성범죄적 관점에서 전형적인 ‘그루밍(grooming) 과정’을 거쳐 피해자를 성착취 한 것으로 봤다.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어나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폭력도 있다.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성착취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가해자와의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착취 대상이 된다.

대한유도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달 왕기춘을 영구 제명하고 삭단(단급을 삭제하는 조치) 징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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