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법] 그 이후로도 남게 되는 것들에 관하여
[모두의 법] 그 이후로도 남게 되는 것들에 관하여
  •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20.07.24 16:58
  • 수정 2020-07-29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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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와 메모들이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도서관 입구에 부착돼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와 메모들이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도서관 입구에 부착돼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그 사건’ 이후로 여기저기에서 문의가 들어온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가해자가 사망하게 되면 그것으로 모든 책임은 다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냐고. 독자들 중에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 오늘은 이 물음에 관해서 간략하게나마 법리를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가해자가 사망되면 그 당사자의 형사책임을 추궁할 방법은 없다. 형사고소가 있었더라도 피의자가 사망하면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서 ‘공소권없음’을 주문으로 하는 불기소처분이 내려진다. 형사책임이란 문제가 되는 특정한 행위를 하였던 바로 그 사람에 대해서만 물을 수 있는 것일 뿐, 다른 사람이 그 대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설령 주변인들에게 2차 피해 유발자로서의 또는 가해행위에 대한 방조범으로서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하는 쟁점이 남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주변인은 스스로 범한 2차 피해 유발행위 또는 방조행위의 행위자 본인으로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형사책임을 대신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사책임의 영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누군가가 불법행위를 범했다면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은 형사책임과 별도로 발생한다. 예컨대 사기죄를 범한 자가 형사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입감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민사채무가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형사책임을 물을 방법이 소멸했다고 해서 민사책임이 덩달아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민법상의 상속의 법리에 의거하여 손해배상채무는 상속분에 따라서 상속인들에게 귀속된다. 비단 성희롱·성폭력뿐만 아니라 불법행위 일반에 있어서 그러하다. 법원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무가 사망한 불법행위자의 상속인들에게 승계되므로 피해자가 그 상속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인정하고 있고, 그러한 취지의 판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는 민법 제756조가 정하는 사용자의 배상책임 법리에 따라서 그 사용자에 해당하는 법인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직접 가해행위를 범한 피용자(被傭者)가 설령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사용자 책임이 그대로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는 다소 어려운 이야기 하나. 민법 제35조 제1항은 이렇게 정한다. “법인은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사 기타 대표자는 이로 인하여 자기의 손해배상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대법원은 위 조문을 이렇게 새긴다. ‘대표자가 직무상의 불법행위를 했다면 이는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배상책임과는 성질이 다른 것으로서 법인 그 자체의 불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배상책임이 발생한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 우리 법은 성희롱의 개념요소로서 ‘업무관련성’을 명시해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가 법률상 성희롱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볼 만한 여지가 있다. (갑자기 성폭력에 관해서는 어디다 내팽개쳐 두고 성희롱만을 논하고 있는 거냐고 오해는 마시라. 여기서 말하는 ‘성희롱’ 개념이란 업무상 발생한 성폭력범죄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의미에서의 성희롱을 가리킨다.)

필자가 수년 전부터 여성신문 지면을 통해서 몇 차례 강조해 왔으나 이번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쟁점 하나. 기관장 본인의 직접적 가해책임 유무가 다투어지고 있는 상황에 관해서는 양성평등기본법이 아무 것도 말해주고 있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 법이 놓쳐 왔던 맹점을 양성평등기본법의 개선입법을 통해서 메워 나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단 우선적으로는 민법 제35조 제1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법인 대표자의 직무상 불법행위는 당연히 법인 그 자체의 불법행위 책임으로 간주된다는 바로 그 논리.

대표자의 성폭력 행위로 인한 책임을 위 민법 조항을 근거로 하여 법인 그 자체의 불법행위 책임으로서 인정한 선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순수하게 법리적으로만 따지고 든다면 위 조문상의 ‘직무’와 성희롱의 개념요소인 ‘업무관련성’을 등가적인 것으로서 볼 수 있는지, 혹시 위 조문은 말 그대로 대표자의 ‘직무상 대표행위’가 불법행위인 경우만을 한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어서 성폭력 행위가 여기에 포섭되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등 율사들의 복잡다기한 논쟁거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향적으로 자구를 읽어보자면 해석상 이와 같은 논리구성이 불가능하다고만 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법인 자체에 대해서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민법 제35조 제1항에는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책임과는 달리, 법인을 면책할 수 있는 경우에 관한 단서도 없다.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에서라면 민법 제35조 제1항이 더욱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이처럼 가능한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이를 활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는, 적어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향후의 개선입법에서라도 민법 제35조 제1항의 입법형식을 참조하여 피해자가 끝까지 그 책임 추궁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끔 하는 근거조문을 마련해 둘 필요가 크지 않을까.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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