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혐의 피고소 이후
피해자 변호사 향한 비방 쏟아져
‘정치적 의도 있다’ 음모론까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피해자 변호인에게도 적용해”

 

22일 오전 서울 시내 모처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고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2일 오전 서울 시내 모처에서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 2차 기자회견'이 열렸다. ⓒ홍수형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이제 피해자 변론을 맡은 김재련 변호사(48·사법연수원 32기)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신상털이’를 비롯해 피해자의 고소와 기자회견을 연 행위에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2차 가해라고 비판 받자 방향을 돌려 변호인을 비판하는 모습이다.

피해자 측과 연대단체도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와 변호인, 지원단체에 대한 비난 공격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변호인에 대한 공격은 곧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대한 비방이 시작된 것은 지난 13일 첫 기자회견서부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음모론’이 쏟아졌다. ‘변호인이 고소와 기자회견을 부추겼다’ ‘시장의 죽음에 책임져라’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 내용이다. 김 변호사가 박근혜 정권 당시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으로 임명됐고 2016년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맡은 것이 주요 빌미가 됐다.

한 여권 지지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변호사 아웃이면 피해자도 아웃”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 밑으로는 “동의한다”는 뜻의 숫자들이 뒤따랐다. 다른 또 다른 커뮤니티에는 과거 이력부터 배우자 기사까지 신상 퍼나르기가 이어졌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는 김 변호사가 과거 위안부화해치유재단 이사를 맡았다는 이력과 그의 배우자가 박근혜 정부 시절 한 언론사의 고위직을 맡았다는 것을 들어 “공작 냄새가 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 22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 22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일부 인터넷언론에서는 김 변호사가 ‘의도’를 갖고 피해자 변론을 맡은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를 올리고 있다.

지난 19일 한 인터넷언론에서는 ‘[주장] 김재련 변호사와 조선일보, ’2차가해' 운운 자격있나’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현재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김 변호사가) 정치적 입지나 공세를 위한 노력을, 피해자 보호와 2차 가해 비판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쓴다. 김 변호사의 여성·아동인권 관련 경력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쌓은 것이라며 진영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200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32기)를 마친 뒤 2003년 법률사무소를 열고 여성인권 보호와 아동 성폭력 피해자 지원 관련 사건을 맡아왔다. 고려대 의대 강제추행사건, 38년 전 친부에 의한 성폭력사건 민사 손해배상소송 등 굵직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여성인권 변호인’으로 선발됐다. 2018년에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의 초기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두 사람은 이화여대 법대 동기다. 그러나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이사 등 과거 이력이 논란이 되자 김 변호사는 사임했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피해자 변호인에게도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절도나 강도 피해자에게는 요구하지 않지만,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고 진영논리를 들이대듯 피해자 변호인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피해자 변호인 등 주변인을 향한 공격은 피해자의 입을 막는 또 다른 무기가 된다. 유력 정치인이나 유명인에 의한 성폭력은 가해자의 영향력에 따라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의 양상도 심각하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률사무실에는 하루에 수백 통의 전화가 쏟아져 다른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서 변호사는 “피해자 변론을 맡았다는 이유로 변호인이 비방에 시달리는 등 이중고를 짊어져야 한다면 피해자는 사건을 알리는 것을 주저할 수 있고, 변호사들의 운신의 폭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2차 기자회견에서 “변호인에 대한 공격은 곧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단체나 변호인이 피해자를 부추겼다’는 2차 피해에 대해 “피해자를 비자발적, 수동적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며 이 자체로 피해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는 변호인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요인을 검토해 변호인을 선택했다”면서 “단체의 지원 여부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진행했으며 모든 건에 대해 피해자와 상의하고 그 범위 내에서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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